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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사모아, 황금 빛이 물드는 섬나라

by 돌야dolya100 2024. 10. 8.

황금 빛이 물드는 섬나라 사모아의 정식 국명은 "사모아 독립국(Samoa)"이며, 1962년 1월 1일, 사모아가 뉴질랜드로부터 독립국이 되면서 시작된 명칭이다. 사모아라는 뜻은 풍부한 섬, 혹은 "내기"를 뜻한다. 사모아는 내기 혹은 주어진 것을 뜻하는 "Samo"와 장소를 의미하는 접미사 "a"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따라서 사모아는 풍성한 섬 혹은 내기하는 섬(장소)라는 뜻을 가진 명칭이다. 황금 빛이 물드는 사모아라는 표현은 일상 속에서 따뜻한 사모아를 느낄수 있는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으로서 사모아는 태평양의, 폴리네시아의 역사적, 문화적 중심지이며, 사모아 제도의 아름다움과 자연을 반영한 시적 표현이다. 사모아의 공식적 언어는 사모아어(Samoan)와 영어이다. 사모아어는 폴리네시아어의 한 계열이며 영어와 함께 교육, 정부, 비즈니스 등 모든 분야에서 사용된다.

사모아 지도사모아, 황금 빛이 몰드는 섬나라
사모아 지도 황금 빛이 물드는 사모아의 섬나라

1. 사모아의 영토와 수도, 인구와 인종

- 사모아의 영토와 수도

사모아는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 지역에 속하였으며 두 개의 큰 섬과 여러개의 작은 섬들(16개)로 이루어진 섬 나라이다. 사모아의 총 면적은 2,831 제곱킬로미터이며 주요 섬은 우폴루(Upolu)와 사바이(Savaii)이다.

우폴루는 아름다운 산과 해변으로 유명하며 사모아의 수도인 아피아가 있고 인구의 대다수가 거주한다.

사바이섬은 화산 활동으로 이루어진 섬이며 사모아에서 가장 큰섬으로서 전통적 사모아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두개의 큰 섬 외에도 아폴리마(Apolima), 마노노(Manono), 코푸(kofe), 니우(Niue) 등이 있다. 사모아의 수도는 우폴루 섬의 북서쪽 해안에 위치한, 아피아(Apia)이며 자연항으로 둘러싸여있다. 우폴루는 사모아에서 가장 큰 도시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 사모아의 인구와 인종

사모아의 인구는 2023년 기준, 22 만명 정도로 추정되며, 주로 우폴루와 사바이에 집중되어 있다. 우폴루에 는 약 75%의 인구(16만명)가 거주하며 수도인 아피아에는 3만 5천명 정도가 거주한다. 사바이는 사모아에서 가장 큰 화산섬이지만 인구는 상대적으로 적은 3만명 정도가 거주한다. 그외에 아폴리마와 마노노 등 작은 섬들에서도 각각 수백명에서 수천명씩 거주하고 있다. 사모아의 인종 비율은 폴리네시아계(서사모아인)가 전체 인구의 92%를 차지한다. 독일, 영국 등 유럽계가 7%, 유럽인과 사모아인의 혼혈이 0.5%, 중국계 및 아시아계와 다른 태평양 섬 출신들이 0.5%를 차지한다.

 

2. 사모아의 역사, 정치, 경제, 교육

- 사모아의 역사

황금 빛이 물드는 신비한 섬나라, 사모아의 역사는 수천년에 걸쳐있다.

사모아 올드 올레소

사모아의 역사는 초기 고대 정착민들의 이주와 정착기(초기 폴리네시아 문화), 유럽인들의 탐험과 식민지 시대, 뉴질랜드 통치와 독립운동, 독립국과 현대 사모아로 나눌수 있다. 사모아에는 B.C.3000년에서 1000년사이, 동남아시아로부터 폴리네시아인들의 이주와 정착으로 시작된다. 폴리네시아인들은 태평양을 횡단하면서 사모아를 비롯하여 하와이, 뉴질랜드, 이스터 섬, 통가 등 여러 섬으로 흩어져 정착하게 된다. 사모아에 정착한 폴리네시아인들은 오세아니아 언어를 사용하였던 오스트로네시아 계열의 라피타인들이 처음 정착하였다. 오스트로네시아 언어는 크게 폴리네시

사모아 올드 올레소

아어, 멜라네시아어, 미크로네시아어로 나누어지는데 오세아니아어는 태평양의 여러 국가와 섬들에서 사용하는 넓은 언어군이다. 사모아언어는 폴리네시아어 계열이며 오세아니아어에서 갈라져 나온 하위 언어중 하나이다. 사모아에 정착한 폴리네시아 인들은 유럽인들이 탐험을 하기 전까지, 오랜 세월 부족 국가로 존재하면서 전통과 문화, 정치 구조를 형성하고 발전시켰다. 사모아의 부족들은 마타이(Matai)라는 족장을 중심으로 사회 체계가 형성되었으며 이것은 현대 정치에까지 전해진 사모아의 사회적 구조이다. 이들은 주로 사탕수수, 타로, 코코넛 등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 하였으며 주요 생계수단은 어업이었다. A.D. 7세기와 8세기부터 사모아의 부족 체계에는 변화가 생겼다. 각 부족은 부족장이 통치하였고 고위 귀족과 일반 시민으로 계층 구조가 생겼으며 부족간의 갈등과 전투도 빈번하게 발행하였고 동맹과 연합도 형성되었다. 또한 태평양의 여러 다른 섬들과도 문화적 교류와 교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확대되었다. 이러한 부족 중심의 사회는 유럽인들이 태평양의 섬들에 대하여 탐험을 시작하였던 18세기까지 지속되었다. 18세기,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사모아를 방문하여 탐험하게 된다. 1722년 네델란드의 제이콥 로게벤(Jacob Roggeveen)이 사모아를 처음 발견하여 탐험을 하였고, 46년 후, 1768년 프랑스 탐험가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Louis Antoine de Bougainville)이 사모아 섬을 탐험하였다. 1830년대, 런던 선교회 소속(London Missionary Society),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가 사모아에 도착하였다. 윌리엄스는 사모아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고 성경을 번역하고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사모아를 중심으로 태평양의 여러 다른 섬에서도 선교 활동을 펼침으로 기독교가 태평양의 여러 섬들과 사모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세기 중반부터, 사모아에서 마 라피(Malietoa)왕이 통치하였던 부족이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하나의 통합된 왕국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 라피 왕은 사모아 전 지역을 지배하게 된 최초의 강력한 왕이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영국, 미국, 독일 등 서구 열강들이 태평양 지역의 영향력 확대로 인하여 사모아를 두고 경쟁하고 대립함으로서 전쟁에 대한 긴장되 조성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889년 3월 15일과 16일 사이 사모아의 아피아 항구에서 미국과 독일 사아에 사모아를 두고 전투(아피아 전투, Battle of Apia)가 벌어졌다. 이 전투의 배경은, 사모아의 왕권을 둘러싸고 원주민들 사이에 내전이 발생하였고 미국은 마 라피(Chief Malietoa) 왕을 지지하였고, 독일은 경쟁자였던 타마세세(Tamasese) 왕을 지지한데서 비롯된 전투였다. 미국과 독일 양국은 사모아의 내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군대와 군함을 파견하였다. 그리하여 1889년 3월, 미국의 더니(Dauntless)함과 콘스티튜션(Constitution)함이 아피아 항에 도착하였고, 독일의 슐레지엔(Schleswig)함과 노르드독(Norddeutschland)함이 도착하였다. 전투는 양측의 군함이 서로 포격전으로 시작되어 2일동안 전투를 치루었지만 양쪽다 막대한 사상자와 군함만 파괴된채 승부는 나지 않았다. 미국과 독일은 이 한번의 전투로 전쟁을 종결 짓기로 합의하였으며 1899년, 미국과 독일은, 사모아에 대한 영토 분할을위하여 베를린 조약(Berlin Treaty)을 통해 사모아를 서사모아와 동사모아로 분할하게 된다. 이로인하여 서사모아(현,사모아)는 독일의 식민지가 되었고 동사모아(현, 미국령)는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914년, 1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기 제국과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와 동맹을 맺고 연합군(프랑스, 영국, 러시아, 이탈리아, 미국,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전하게 됨으로서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그로인하여 많은 영토를 상실하였으며 태평양 지역의 식민지들, 특히 서사모아에 대하여 통제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독일이 1차 세계 대전을 치루는 동안, 뉴질랜드가 서사모아를 정복하였고 전쟁에서 패배한 독일은 더 이상 서사모아에 대한 통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1차 세계 대전 종전 후인, 1919년, 프랑스의 베르사유(Versailles) 조약을 통해 독일은 패전국으로서 모든 식민지를 상실해야 했으며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서사모아는 뉴질랜드가 통치하게 되었다. 뉴질랜드는 국제 연맹의 결정에 따라 1920년부터 1962년까지, 약 82년 동안 서사모아를 통치하게 된다. 서사모아 원주민들은 뉴질랜드에 저항하여 1920년대부터 자주권 회복을 위하여 비폭력 저항 운동(마우운동, Mau)을 전개해 나갔다. 이러한 독립과 자치권에 대한 비폭력 운동은 1930년대와 1940년대 더욱 강하게 일어났다. 그리하여 마침내 1962년 1월 1일, 서사모아는 뉴질랜드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사모아"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사모아는 태평양 지역에서 독립한 최초의 독립 국가가 되었으며 "사모아 독립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76년 9월 15일, 사모아는 유엔(UN)에 가입하여 국제 사회에서 정식 회원국으로서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사모아의 유엔 가입은 사모아 독립국의 주권과 독립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다양한 국제 기구와도 협력하게 되었다.

- 사모아의 정치

사모아의 정치는 독립이후 전통(마타이, 족장)과 현대 정치가 결합된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다. 즉 입헌 군주제와 유사한 전통적 요소를 가진 민주 공화국으로서, 국가의 수장이 대통령이며 국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다.  정부형태는 내각제로 운영되며 대통령이 있지만 실제는 총리와 내각이 권력을 가진다. 대통령은 5년 임기로 국가의 행사와 의식을 담당하며 입법부에서 선출된 총리는 내각을 구성하고 정부를 운영한다. 입법부, 사모아 의회는 일반 의회로도 불리는, 단원제로서 51명의 의원이 5년 임기로 선출된다. 이들 의원들은 대부분 마타이(Matai, 부족장)들로구성되며, 마타이가 아니면 출마할 수 없다. 주요 정당에는 사모아 인민당, 사모아 국가당, 사모아 노동당 등이 경쟁한다. 사모아의 정치는 전통적 부족장(마타이)들의 영향력과 민주주의 원칙을 조화롭게 유지하고 있다.

- 사모아의 경제

사모아의 경제는 농업과 어업, 관광업, 해외 송금 등이 대부분이며 농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주요 농작물은 카사바, 타로, 코코넛, 커피, 바나나 등이며 코코넛은 수출품이기도 하다. 사모아는 넓은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 인하여, 주로 참치를 중심으로 하는 어업 활동이 활발하다. 코코넛과 참치의 수출은 외화를 획득하는 주요 수단이다. 또한 외화 수입 중 가장 큰 비중은 사모아의 관광업이다. 사모아는 황금 빛이 물드는 나라답게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많은 나라이며 이로인하여 호주, 뉴질랜드, 미국, 유럽, 아시아등 다양한 대륙과 나라에서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사모아 경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해외 송금이다. 사모아의 많은 사람들은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 거주하기 때문에 이들이 사모아로 보내는 송금은 사모아 경제에 큰 기여를 한다. 사모아의 제조업은 작은 규모이며 코코넛과 관련된 농산물 가공, 오일 등 생산이 대부분이다. 이외에도 전자제품, 섬유와 같은 조립 공장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제조업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사모아의 경제는 수출보다는 수입에 의존하며 대부분 연료, 소비재, 기계류를 수입한다. 2023년, 사모아의 GDP는 9억 8천만 달러이며 세계 187위의 작은 경제 규모이다.

- 사모아의 교육

사모아의 교육 제도는 서구식 교육 체계이며 초등, 중등, 고등 교육으로 이루어진다. 초등학교는 5세~15세까지 의무 교육이며, 8학년으로 진행된다. 중학교는 13세~17세까지 4년 과정이며 학문과 실용적 기술을 모두 공부하며 고등 교육(대학)을 준비한다. 사모아의 고등 교육은 학문과 기술 교육, 직업 훈련 등 다양하게 진행된다. 교육 자료의 부족, 시설 문제, 교사 전문성의 부족으로 많은 학생들이 더 높은 교육을 하기 위하여 뉴질랜드, 호주, 미국 등지로 해외 유학을 떠난다. 따라서 사모아의 고등 교육 기관은 많은 제한을 받으며 전문 인력과 자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주요 대학으로는, 사모아 국립 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Samoa). 태평양 대학교(University of the South Pacific, Alafua Campus), 사모아 교사 훈련 대학(Samoa Teacher Training College) 등이 있다. 이들 대학에서는 교육학, 비즈니스, 사회학, 환경학, 농업 등 다양한 전공 과목을 공부하며 사모아 교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를 양성한다. 이외에는 여러 직업 학교와 기술 교육 기관이 있다.

 

3. 사모아의 유적지와 자연 경관

- 사모아의 유적지

사모아 전사 유적지

사모아는 역사적 유적지가 많다. 타푸타루 전사 유적지(Taratafa Warrior Site)는 전사들이 전투 훈련을 했던 곳으로서 사모아 전통적 전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사모아의 수도 아피아에 위치한, 사모아 국립 역사 박물관(Samoa Museum)은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모아 스톤 마우(Stone Mounds of Samoa)는 사모아 고대 무덤이나 제사 공간으로 여겨진다. 사모아 전통 마을(Samoan Village)은 사모아의 건축 양식과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올드 올레소(Old Olototo)는 사모아의 작은 섬 중 하나인 업올

사모아 스톤 마우

루(Upolu)에 위치한 유적지로서 초기 사모아인들의 정착지 중 하나이며 고대 사회의 삶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푸나푸이(Punapu`i)는 고대 돌 구조물, 돌로 만들어진 거주지 유적지이다. 타마사세(Tamasa)는 고대 종교적 제사 의식을 치루었던 장소이며 푸시(Pu`ehonua o Honaunau)는 고대 부족의 신성한 장소로서 사모아 사람들의 피신 장소이기도 하다. 사모아 맥주 양조장은 사모아의 전통적 맥주 양조장이며 사모아 전체에 여러 곳에 있다.

- 사모아의 자연 경관

사바이이 섬의 해변

섬나라 답게 사모아의 자연 경관은 황금 빛이 물든듯 아름다운 곳이 많다. 화산 활동으로 이루어진 섬들에는 울창한 열대 우림과 언덕으로 구성되었으며 주요 산으로는 1,858m의 실리실리산(Mount Sillisili)과 1,300m의 피아모에산(Mount Fiamoe)이 있다. 또한 사모아는 맑고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백사장으로도 유명하다. 타푸나 해변(Tafuna Beach)과 수포타 해변(Su`upota Beach), 그리고 사바이이(Savaii) 섬의 해변은 아주 유명한 곳이며 주변의 바다에는 여러 다양한 산호초들이 아름답게 형성되어 있다. 사모아에는 아름다운 폭포들도 있다.

사모아 푸리푸리 폭포

파푸아 폭포(Papapapaitai Falls)는 100m 높이이며 물줄기 경관이 장관을 이룬다. 사모아의 우폴루 섬에는 약 30m 높이의 팔로 폭포(Palolo Falls)가 있다. 이 폭포는 울창한 열대 우림 속에 있어서 폭포까지 가는 길이 다소 험하지만 많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또한 사모아의 사바이이(Savaii) 섬에는 20m 높이의 푸리푸리 폭포(Pu`unui Falls)가 있다. 수도 아피아 근처에는 사모아 문화 센터, 마레 포리 킬레(Mare Fo`i Kile), 스위트 러빙(Loving) 비치가 있다. 사모아는 모두 16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각 섬에는 열대 우림과 폭포, 해변 등 다양한 자연 경관을 자랑하며 여러 개의 국립 공원이 있어 관광객에게 다양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사모아는 황금 빛이 물드는 나라답게 따뜻한 느낌을주는 섬이며, 풍부하고 독특한 자연 경관과 문화와 역사를 자랑한다. 사모아를 "황금 빛으로 물든 나라"라고 표현한 것은 태양 빛이 지는 해질녁, 자연과 문화가 그 빛에 반사되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사용한 시적 표현이다. 황금 빛은 따뜻한 햇빛을 받아 일몰때는 풍요롭고 행복한 환경을 조성한다. 사모아의 열대 우림과 해변, 그리고 푸른 바다가 황금빛 태양 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따뜻함을 상상하게 하는 시적 표현이다. 사모아는 농업과 관광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가졌기에, 사모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사모아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음악과 의식 등 풍부한 문화적 체험을 경험하도록 정책을 펼치고 있다. 사모아는 기후 변화의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으며 빠른 해수면 상승과 기온 상승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나라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사모아는 기후 변화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국제적인 협력을 계속 시도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