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움켜쥔 태평양의 루비, 뉴칼레도니아의 정식 명칭은 누벨칼레도니(Nouvelle-Caledonie)이며 프랑스말로 새로운 칼레도니아라는 뜻이다. 뉴칼레도니아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1774년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이다. 제임스 쿡은 이 섬을 발견한 후 스코틀랜드의 고대 이름인 칼레도니아에서 영감을 얻어 영어식 이름인, 뉴 칼레도니아(New Caledonia)라 붙였다. 그러나 1853년 프랑스가 뉴칼레도니아를 점령한 후 프랑스어로 누벨 칼레도니(Nouvelle-Caledonie)라 부르게 되었다. 뉴 칼레도니아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며 원주민들은 30개의 다양한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는데 그 중에서도 드레후어(Drehu), 은엥고네어(Nengone), 파이치니어(Paici) 등이 있다.
1. 뉴칼레도니아의 영토와 수도, 인구와 인종
- 뉴칼레도니아의 영토와 수도
뉴칼레도니아는 본섬인 그랑드 테르(Grande Terre) 섬과 주변의 여러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면적은 18,575 제곱킬로미터이다. 뉴칼레도니아의 수도는 누메아(Noumea)이며 수도 면적은 45,7 제곱 킬로미터, 2023년 기준 약 9만 4천명 정도가 거주 중이다.
- 뉴칼레도니아의 인구와 인종
2023년 기준, 뉴칼레도니아의 인구는 약 271만명 정도이며, 인종 비율은 카낙(kanak)이 41.2%이다. 카낙 사람들은 뉴칼레도니아의 원주민을 말하며 이들은 멜라네시아계에 속한 사람들이다. 유럽계가 24.1%, 타이티안이 2%, 인도네시아계가 1.4%,. 니바누아(Ni-Vanuatu)계가 0.9%, 베트남및 아시아계가 0.4%, 혼혈과 기타 인종이 11.3%이며 이외에도 여러 다양한 소수 민족이 존재한다.
2. 뉴칼레도니아의 역사, 정치, 경제, 교육
- 뉴칼레도니아의 역사
뉴칼레도니아의 역사는 고대 원주민 정착기, 유럽 탐험과 식민지 시대, 1차세계 대전과 독립운동, 현대로 나눌수 있다. 뉴칼레도니아에는 약 3000년에서 1000년사이 멜라네시아계 원주민들인, 카낙(Kanak) 사람들이 정착함으로서 문화와 역사가 시작되었다. 카낙 사람들 또한 부족 사회를 이루어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며 그들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들 카낙 사람들은 유럽의 탐험가들에 의해 발견되기까지 아주 오랜 세월 여러 부족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여왔다.
18세기 중반, 유럽 탐험가들에 의하여 뉴칼레도니아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특히 1774년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이 뉴칼레도니아를 발견 한 후 스코틀랜드의 고대 이름인 칼레도니아를 따서 뉴 칼레도니아(New Caledonia)라 이름을 붙였다. 그러다 1853년 프랑스가 뉴칼레도니아를 점령한 후 공식적식민지로 삼았다. 프랑스는 뉴칼레도니아의 토지와 자원을 강탈하였고 프랑스의 문화와 종교를 강요하였으며 그로인하여 카낙 사람들의 전통적 생활 방식이 무너졌고 문화와 일상 생활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1836년, 제임스 오드리(James Oudi)와 그의 아내가 뉴칼레도니아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선교 활동을 하였으며 1840년, 영국 성공회(Anglican Church)와 프랑스 개신교(Protestant Church) 선교사들이 도착하여 선교 활동을 하였다. 1960년대에는 여러 선교단체들이 선교 활동을 하였으며 특히 카톨릭 선교사들이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하였는데 그중에서도 1864년, 성 요셉 선교회(Society of Mary, Marists) 선교사들이 뉴칼레도니아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다. 선교사들은 학교와 병원을 짓고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통해 지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 선교사들과 함께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이민자들도 급증하게 되었고 카낙 원주민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하였다. 유럽의 이민자들은 대부분 농업과 광업 분야에 노동자로 고용된 사람들이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카낙 원주민들은 토지를 잃고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일들이 발생하였다. 카낙 원주민들은 이러한 프랑스의 정책에 저항하였다. 그리하여 1878년 사타레 전쟁(Louise-Pichon War)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전쟁은 카낙 원주민들이 프랑스의 토지 강탈과 문화 억압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다. 사타레 전쟁 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졌으며 열악한 무기로 인하여 카낙 전사들은 결국 프랑스 군대에 패배하게 된다. 이 전쟁 후 1880년대, 프랑스는 뉴칼레도니아의 식민지 정책을 조정하여 카낙 사람들에게 일정한 권리를 부여하였다. 그러나 1890년대, 프랑스가 태평양에서 제국주의 정책을 강화하면서 뉴칼레도니아는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 되었으며 그로인하여 카낙 원주민들에 대한 억압이 더욱 강화되었다. 1900년대의 뉴칼레도니아 원주민들의 삶은 서구화되어가고 있었으며 교육과 의료분야에서 많은 혜택을 받기도 하였다. 1914년~1918년 1차 세계 대전 동안 뉴칼레도니아는 아시아 태평양 전역에서 일본을 견재하는 연합군의 중요한 군사 기지로 활용되었다.
1차 세계 대전 이전, 일본은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1895년, 청일 전쟁, 1904년과 1905년에 일어났던 러일 전쟁을 모두 승리한 후 극동 아시아와 태평양에서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일본은, 서구 열강에게 큰 긴장감을 주었다. 1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국이었던 일본은 영국과 프랑스와 동맹국이었지만 태평양에서의 군사적 확장은 연합군에게는 걱정 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호주, 뉴질랜드,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군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하여 뉴칼레도니아를 군사 기지로 활용하게 되었다. 1차 세게 대전 중, 프랑스는 카낙 원주민들에게 자원병을 모집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카낙 전사들이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되었으며 주로 프랑스 본토와 관련된 전선에 배치되어 전투를 치루었다. 1차 세계 대전 종전후 전쟁에 참전했던 카낙 군인들이 뉴칼레도니아로 돌아왔지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채 어려움을 겪게되었고 여전히 프랑스의 차별과 억압을 당해야 했다. 이 카낙 참전 용사들은 이후 뉴칼레도니아의 독립 운동의 핵심 세력들이 된다. 1942년~1945년 2차 세계 대전 동안 뉴칼레도니아는 또 한번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미군의 군사 기지로 사용되었다. 이때 많은 미군과 호주군이 뉴칼레도니아에 주둔하면서 뉴칼레도니아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뉴칼레도니아에서 직접적 전투는 없었지만 연합군 병력과 자원이 배치되었으며 연합군 병력을 위한 훈련과 보급 기지로 활용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1946년, 뉴칼레도니아는 프랑스의 해외 영토로 재지정되었으며, 일부 자치권도 부여하였다. 그러나 이시기, 카낙 원주민들은 참전 용사들이 주체가되어 독립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부터는 원주민들이 프랑스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하였으며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게 되었다. 1960년대, 뉴칼레도니아는,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면서 카낙 원주민들의 독립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1967년 6월,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대규모 시위와 운동이 벌어졌다. 이 시위로 인하여 카낙 원주민들의 정치적 조직이 강화되었으며 자치권과 독립을 위한 단체들이 결성되었다. 이로인하여 프랑스는 뉴칼레도니아에 식민지 정책을 조정하여 카낙 원주민들에게 더 많은 권리와 자치권을 부여하게 되었다. 1960년대부터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였던 카낙 원주민들의 노력으로 1984년 카낙 민족 연합(Union Caledonienne)이라는 정치적 단체가 설립되었으며 이 조직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뉴칼레도니아의 독립과 자치를 위한 운동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카낙 원주민들과 프랑스는 더욱 대립하게 되었지만 결국 1988년 마틸다 협정(Matra Agreement)을 통해 뉴칼레도니아의 자치와 권리를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게된다. 그리하여 10년 후, 1998년 누벨칼레도니법(Nouvelle-Caledonie Law)이 제정됨으로서 뉴칼레도니아는 자치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뉴칼레도니아는 완전한 독립을 위하여 세번의 국민 투표를 하게된다. 2018년, 독립 여부를 결정하는 첫번째 투표에서는 독립을 반대하는 표가 56.4%가 나왔다. 2020년 투표에서는 반대가 53.3%가 나왔고, 2021년 투표에서는 반대 표가 96.5%가 나와서 결국 완전한 독립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 뉴칼레도니아의 정치
뉴칼레도니아의 정치는 프랑스의 해외 영토로서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 1998년 누벨칼레도니법으로 인하여 자치 정부가 구성되었으며 행정부는 행정 집행부(Gouvernement)와 행정 의회(Congres)로 구성되었다. 총 54명으로 이루어진 의회는 여러 정당과 단체의 대표들로 이루어졌으며 자치 정부의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부는 의회의 승인을 받아 정책을 집행한다. 주요 정당에는 카낙 민족 연합(Union Caledonienne, UC), FLNKS(Kanak Socialist National Liberation Front, 독입당), 프랑스 공화국 연합(Les Republicains), 뉴칼레도니아의 진보당(Parti Progressiste Caledonien, PPC), 독립과 평화당(Parti de I`lndependance et de la Paix), 자유당(Parti des Liberaux) 등이 있다.
- 뉴칼레도니아의 경제
뉴칼레도니아의 경제는 자원 개발과 농업, 어업, 관광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뉴칼레도니아는 프랑스령으로서 많은 자원을 보유한 나라이다. 따라서 경제의 대부분은 자원 개발에 의존한다. 특히 니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며 니켈 산업은 주요 수출품이기도 하다. 농업과 어업은 비교적 소규모이며 과일, 채소를 생산하여 현지 소비와 수출로도 이어지고 있다. 뉴켈레도니아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인하여 관광업도 발달되었으며 관광업 또한 뉴칼레도니아의 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2023년 기준 뉴칼레도니아의 GDP는 85억 달러이며 프랑스령이기에 세계 GDP 순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최근 몇년간 니켈 가격의 상승과 관광 산업이 회복되고 성장하여 뉴칼레도니아의 경제는 점점 나아지고 있으며 태평양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경제 구조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 뉴칼레도니아의 교육
뉴칼레도니아의 교육은 초등, 중등, 고등 교육으로 진행된다. 초등 교육은 6세~11세까지 5년 과정이며 프랑스 교육 과정으로 진행된다. 중등 교육은 11세~15세까지 4년 과정이며 중학교를 마치면 고등학교롤 진학하게 된다. 고등 교육은 뉴칼레도니아 대학(Universite de la Nouvelle-Caledonie)이 있으며 교육은 프랑스 교육 과정으로 운영된다. 이외에도 프랑스 본토와 연계된 대학에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진다. 뉴칼레도니아의 교육은 프랑스의 영향으로 잘 구성되었지만 자원부족, 교육 수준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3. 뉴칼레도니아의 유적지와 자연 경관
- 뉴칼레도니아의 유적지
뉴칼레도니아에는 다양한 유적지가 있다. 마그네타(Magnetite)는 고대 카낙 원주민 생활과 문화와 관련된 유적지이며, 유베(Uvea) 유적지는 카낙 원주민들의 전통적 건축 양식을 엿볼수 있는 유적지이다. 일랑(Sylvain) 유적지는 고대 카낙 원주민 마을, 유적지이며 가르부(Garbou)는 고대 카낙 원주민들의 고인돌과 관련된 유적지이다. 이슬란 세븐 아이즈(Isle of the Seven Eyes)는 고대 카낙 원주민들의 이야기들이 전해지는 유적지이며, 로토아(Loti) 유적지 또한 고대 카낙 원주민들의 마을과 집, 생활 양식을 엿볼수 있는 유적지이다.
- 뉴칼레도니아 자연 경관
뉴칼레도니아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 경관으로 유명하다. 뉴칼레도니아의 해안선을 따라 위치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산호초 중 하나이다. 루이섬(Lifou)은 맑은 바다와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며, 울스네 섬(Ilot Canard)은 작지만 깨끗하고 맑고 아름답다. 1,628m의 몽도르 산(Mont Dore)은 트레킹과 하이킹하기에 좋은 산이며 가스파리 국립공원(Parc National de la Nouvelle-Caledonie)은 다
양한 식물과 동물이 서식하는 하이킹에 좋은곳이다. 뉴칼레도니아의 내륙은 열대우림, 폭포 등으로도 유명하며 누메아의 해변은 하얀 모래와 푸른 바다로 유명하다.
뉴칼레도니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산호초를 보유한 나라이며 아름다운 해안선과 해변, 트레킹에 좋은 몽도르 산과 국립공원, 열대우림과 폭포등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찾는 사람들이 많은 관광 명소이다. 카낙 원주민들은 뉴칼레도니아의 중심이며 오랜세월 원주민들의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켜왔고 보존하여 왔다. 정치적으로는 독립하지 못했지만 자치 정부를 두고 있으며 계속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