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미로에 갇힌 나라, 파푸아뉴기니(Papua New Guinea)의 정식 명칭은 파푸아뉴기니 독립국(Independent State of Papua New Guinea)이다. 이 이름은 1975년 9월 16일, 호주로부터 독립하면서 사용된 공식적 명칭이다. 파푸아뉴기니는 파푸아(Papua)와 뉴기니(New Guinea)의 합성어로서 파푸아는 곱슬곱슬한 머리를 뜻하고, 뉴기니는 1526년 스페인 탐험가 이니고 오르티스 데 레테스(Inigo Ortiz de Retes)가 붙인 이름이다. 이니고 오르티스 데 레테스는 원주민들의 곱슬곱슬한 머리와 외모가 서부 아프리카의 기니 사람들과 비슷하여 누에바 기니(Nueva Guinea)라 부르게 되었다. 파푸아뉴기니에는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12%에 해당하는, 850개가 넘는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으며 단일 국가로는 가장 많은 언어를 보유하고 있다. 공용어는 영어와 토크피신(Tok Pisin), 히리 모투(Hiri Motu)이며 영어는 공식 공용어로서 정부, 행정, 법률, 교육, 문서 등에 사용된다. 토크피신과 히리모투는 모두 영어와 토착 언어가 혼합된 크레올 언어이며, 토크피신은 국민의 50% 이상이 사용하고, 히리모투는 수도와남부 지역에서 사용되는 공용어이다. 토크피신은 식민지 시대 노동자들의 피진(Pidgin)어로 시작되어 시간이 지나면서 크레올화 되었다. 히리모투는 크레올 언어이지만 단순화된 토착 언어에 가깝다. 이것은 파푸아뉴기니 남부의 모투(Motu) 부족이 사용하던 언어를 기반으로 행정과 교역 목적으로 식민지 행정관들이 의사 소통을 위하여 단순화시킨 언어형태이다. 이 외에도 파푸아뉴기니에는 850개가 넘는 토착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 언어들은 파푸아어 계열 혹은 오스트로네시아어 계열에 속한다.
1. 파푸아뉴기니의 영토와 수도, 인구와 인종
- 파푸아뉴기니의 영토와 수도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파푸아뉴기니(Papua New Guinea)는 섬의 동쪽 절반과 주변의 여러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파푸아뉴기니 섬은 그린란드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섬(면적785.753제곱킬로미터)이며, 섬의 동쪽은 파푸아뉴기니, 서쪽은 인도네시아 영토로서 서부 파푸아(West Papua)와 파푸아(Papua)의 두개 주로 나누어 관리되고 있다. 섬의 동쪽 파푸아뉴기니의 면적은 462.840 제곱킬로미터(세계 54번째로 큰 영토)이며 주요 섬들로는 비스마르크 제도(Bismarck Archipelago)의 뉴브리튼(New Britain), 뉴아일랜드(New Ireland), 마누스(Manus)등이 있고 부건빌 섬(Bougainville), 남동쪽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루이지아드 제도(Louisiade Archipelago)가 있다. 파푸아뉴기니는 인도네시아와 서쪽 경계선을 이루며 국경선 길이는 820km이다. 북쪽은 태평양(Pacific Ocean), 남쪽은 산호해(Coral Sea)와 토레스 해협(Torres Strait), 동쪽은 솔로몬 제도(Solomon Islands)와 해양 경계선을 이룬다. 수도는 남쪽 해안에 위치한 240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을 가진, 포트모르즈비(Port Moresby)로서 이곳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인구는 2023년 기준 약 40만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 파푸아뉴기니의 인구와 인종
2023년 기준, 파푸아뉴기니의 인구는 약 900만명 정도이며 인종 비율은 파푸아 사람이 80%를 차지한다. 파푸아 사람(Papuan)은 뉴기니 섬과 주변 섬들에 거주하는 원주민들로서 서로 다른 문화, 언어, 종교를 가지고 있다. 약 5% 정도는 미크로네시아인(Micronesian)들이 파푸아뉴기니의 북쪽 해안선을 따라 거주하며 여러 섬들에 거주하고 있다. 약 3% 정도는 폴리네이사인(Polynesian)들이 파푸아뉴기니 남부 해안선과 여러 섬들에 거주하고 있다. 그외 영국, 호주, 네델란드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유럽계와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계가 12% 정도 거주하고 있다.
2. 파푸아뉴기니의 역사, 정치, 경제
- 파푸아뉴기니의 역사
파푸아뉴기니의 역사는 고대 원주민 시대, 유럽인들의 탐험과 식민지 시대, 2차 세계 대전과 독립, 현대로 나누어 진다. 파푸아뉴기니에는 B.C.3000년부터 오스트로네시아계, 미크로네시아계, 폴리네시아계, 오스트랄로이드계 등 여러 민족의 원주민들이 정착하였다. 파푸아사람들은 오스트랄로이드계(Australoid) 혹은 파푸아계(Papuan)로 분류되며 이들은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뉴기니 섬 및 그 주변의 여러 섬들에 정착하였다. 850개가 넘는 언어들이 사용되는 것으로봐서 상당히 많은 민족들이 이주하여 정착한 것으로 보여진다.
고대 사회 구조는 부족 사회였으며 족장을 중심으로 계급과 권력 구조도 형성되었다.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이 파푸아뉴기니 섬의 지역을 통과하였다. 그러나 파푸아뉴기니 섬을 발견한 것은 아니었으며 탐험도 하지 않았다. 1519년, 마젤란은 국왕의 명령을 받고, 서쪽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세계 일주를 목표로 출항하였다. 1521년, 마젤란은 파푸아뉴기니 섬을 발견하지는 못한채 뉴기니 섬과 필리핀 사이의 섬들을 통과하였다. 이 항로는 이후 유럽인들에게 동아시아로 가는 항로로 알려지게 되었다. 1526년, 마젤란의 항로를 따라서 항해하였던 스페인 탐험가 이니고 오르티스 데 레테스(Inigo Ortiz de Retes)가 파푸아뉴기니의 북서부 해안에 도착하여 탐험을 함으로서 처음으로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1606년에는 스페인의 탐험가, 루이스 벌리엔테(Luis Vaez de Torres)가 다시 뉴기니 섬을 탐험하였다. 루이스 벌리엔테는 스페인 국왕의 명령을 받고 마젠란의 항로를 따라 항해하면서 뉴기니 섬과 그 인근 섬들을 탐험하였다. 그리하여 토레스 해협을 발견하게 된다. 이 해협은 뉴기니 섬과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사이의 해협으로 루이스 벌리엔테 이름을 따서 벌리엔테 해협이라 붙였다. 벌리엔테라는 이름은 스페인에서 흔히 사용하는 성(姓)이었지만 후세의 탐험가들은 벌리엔테의 성을 스페인식으로 변형하여 토레스(Torres)라 하였고 이 해협 또한 토레스 해협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1616년에는 네델란드의 빌헬름 슈트르제몬트가 파푸아뉴기니의 서쪽을 탐험하여 유럽에 알렸으며 1767년, 영국의 토마스 스콧(Thomas Scott)이 파푸아뉴기니의 동부와 남부 해안을 탐험하였다. 1770년에는 영국의 제임스 쿡이 파푸아뉴기니를 탐험하여 광범위한 지도와 기록을 남겼으며 1789년 영국의 해군 장교(대위), 윌리엄 블라이(William Bligh)가 파푸아 뉴기니를 탐험하였다. 윌리엄 블라이 대위는 바운티오를 타고 타히티 빵나무를 영국의 여러 식민지로 운송해야 하는 임무를 띠고 항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운티호의 부선장 플래처 크리스천(Fletcher Christian) 중위를 중심으로 18명의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반란후 일부는 핏케언 섬에 정착하게 되었다. 바운티호 반란 사건이 일어나기 전, 윌리엄 블라이는 파푸아뉴기니 지역을 항해하였고 탐험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이처럼 18세기 후반에는 영국, 네델란드, 프랑스, 독일과 같은 강대국들이 파푸아뉴기니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탐험을 하였다. 그리하여 1830년대부터 파푸아뉴기니의 모든 섬들에 대한 유럽의 식민지 쟁탈이 시작되었다. 1830년대, 영국은 파푸아뉴기니의 남부 해안에서 금, 목재, 석유, 진주, 산호초와 같은 자원을 채굴하였고 무역을 시작하였다. 이때 영국은 태평양에 대한 식민지 정책을 강화하였던 독일과 경쟁을 하게 된다. 1884년 독일은 파푸아뉴기니 섬의 북서부 지역에 독일령 뉴기니를 설립하여 식민지로 선언하였다. 또한 1884년, 네델란드는 서부 뉴기니를 식민지로 선언하여 네델란드의 동인도(현재 인도네시아)에 포함시켰다. 네델란드는 이 지역을 파푸아 또는 서부 뉴기니라 불렀다. 1888년, 영국은 브리티시 뉴기니를 설립하여 파푸아뉴기니 남부와 섬들을 식민지로 선언하였다. 1898년, 네델란드는 서부 뉴기니에 대한 행정적 지배를 강화하여 식민 정부를 수립하였으며 영국과 협정(영국-네델란드 협정)을 통해 경계선을 지정하여 서부 뉴기니는 네델란드가, 동부 뉴기니(지금의 파푸아 뉴기니)는 영국이 통치하게 되었다. 또한 1899년, 영국과 독일 또한 협정을 통해 파푸아뉴기니의 북부는 독일이, 남동부는 영국이 통치하기로 결정하였다. 1902년, 호주는 영국이 관리하였던 파푸아뉴기니의 남부 지역을 관리하면서 실질적 지배권을 행사하였다. 1914년 8월, 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영국의 식민지였던 호주는 영국의 요청으로 독일의 식민지였던 파푸아뉴기니의 북부를 1914년 9월 11일에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1차 세계 대전이 끝 난 후 파리 평화 회의(1919년)를 통하여 패전국, 독일의 해외 식민지는 연합국에 의해 분배되었는데 이때 파푸아뉴기니는 국제 연맹의 결정으로 호주가 위임 통치하게 되었다. 따라서 파푸아뉴기니는 호주가 관리하는 국제 연맹의 위침통치령으로 설정되었으며 호주는 식민지 정부를 수립하고 행정, 경제, 사회 개혁을 추진하면서 뉴기니의 자원을 착취하기 시작하였다. 호주의 지배속에 파푸아뉴기니는 1930년까지 심각한 착취를 당하였고 사회적 개혁과 사회적 인프라도 구축되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략하면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다. 2차 세계 대전의 주축국(Axis Powers)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만주와 중국 일부 등 극동 아시아를 지배하였던 일본은 동남 아시아와 태평양을 지배하기 위하여 진출하였고 파푸아뉴기니는 그 대상 중 하나였다. 일본이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을 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이 본격화 되었다. 1942년 초기, 일본은 솔로몬 제도와 파푸아뉴기니를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파푸아뉴기니 동북부의 라바울(Rabaul)을 점령한 일본은 이 곳을 군사적 요충지로 삼아 남태평양에 대한 군사 작전을 더욱 강화하였다. 연합군(미국, 호주, 뉴질랜드)은 이러한 일본을 격퇴하기 위하여 태평양의 여러 지역과 파푸아뉴기니의 여러 지역에서 극렬한 전투를 벌였다. 1942년 8월 파푸아뉴기니 남부에 위치한 브고부 전투(Battle of Bogobo), 같은해 8월부터 11월사이, 3 개월 동안 벌어진 코코다 트레일(Kokoda Trail) 전투 등에서 연합군이 승전함에 따라 파푸아뉴기니의 일본군은 전략적 우위를 잃게되었다. 1943년, 1년 동안 일본은 라바울을 포함한 여러 전략적 거점에서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1944년 1월, 일본군은 라바울에서 철수하게 되었고 파푸아뉴기니의 모든 전선에서도 점차 후퇴하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2차 세계 대전이 종료되었다. 그러나 여러 전투를 통해 파푸아뉴기니는 많은 곳이 파괴되었고 많은 원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파푸아뉴기니는 호주령이었기에 전후 복구와 재건은 호주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호주는 도로, 철도, 항만 등 산업 기반 시설을 재건하고, 경제 회복을 위하여 원조를 제공하였다. 1949년 호주는 원래 영국의 식민지였던 뉴기니 섬의 남서부에 해당하는 파푸아와 독일의 식민지였던 북동부에 해당하는 뉴기니를 통합하여 하나의 호주령 파푸아뉴기니로 통치하였다. 그리하여 지금의 파푸아뉴기니(동부)는 호주의 직할령으로 1975년까지 지배를 받게된다. 반면 서부 뉴기니(인도네시아 지역)은 2차 세계 대전 후에도 여전히 네델란드의 식민지였다. 1945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는 네델란드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고 1945년 10월, 네델란드는 군대를 파견하여 인도네시아와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인도네이사는 게릴라 작전으로 네델란드군을 괴롭혔으며 네델란드는 의로운 경찰 작전(Operatie Product, 1947년)이란 명목으로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가하였다. 이 군사 작전은 국제 사회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으며 국제 사회는 네델란드에 중재를 요청하여 1949년 3월 로테르담 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에서 인도네시아의 독립이 이루어졌으며 같은해 12월 27일 인도네시아는 공식적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부 뉴기니는 여전히 네델란드의 식민지로 남았다. 여기에 대하여 인도네시아는 서부 뉴기니 또한 인도네시아의 영토라 주장하며 1961년에는 서부 뉴기니에 대한 통합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1962년 뉴욕 협정(The New York Agreement)을 통해 서부 뉴기니는 인도네시아에 양도되었다. 그리하여 1963년 서부 뉴기니는 인도네시아의 1개의 주인 파푸아로 통합되었다.
호주의 지배를 받고있어던 파푸아뉴기니(동부)에서는 1960년대부터 민족주의자들에 의한 자치와 독립의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1964년에는 파푸아뉴기니의 국회가 구성되었고 1971년에는 자치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리하여 1975년 9월 16일, 파푸아뉴기니는 호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였고 영연방의 일원으로 남게되었다. 1990년대의 파푸아뉴기니는 부겐빌 전쟁(Bougainville Civil War, 1988년~1998년)으로 인하여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큰 갈등을 겪게된다. 부겐빌 전쟁은 부겐빌 섬의 분리 주의자들(반군)과 주민들이 독립을 요구하며 파푸아뉴기니 정부와 충돌한 사건이며 이 내전은 10년동안 지속되었고 수천명의 사망자를 낳게되었다. 이 전쟁은 2001년 8월 30일 부겐빌 평화 협정(Bougainville Peace Agreement, BPA)이 체결됨으로서 부겐빌이 일정부분 자치를 부여받음으로서 끝나게 된다.
- 파푸아뉴기니의 정치
파푸아뉴기니의 정치 체제는 전통 사회와 서구식 정치 체제가 복잡하게 결합된 형태로서 의회 민주주의와 입헌 군주제의 상징적 통치 체제 또한 유지하고 있다. 파푸아뉴기니의 군주는 영국의 국왕이며 총독이 국왕을 대신하고 실질적 정치 권한은 총리에게 있다. 영국 국왕을 대신하는 총독(Governor-General)은 의례적 행사를 수행하며 영국 국왕의 대리인으로서 영국 왕에 의해 임명되어 파푸아뉴기니 내각의 추천을 받는다. 총리는 파푸아뉴기니 정부의 수반이며 국가의 실질적 행정 지도자이다. 총리는 내각을 이끌며 정부의 정책을 집행하고 행정의 실제적 권한을 가진다. 총리는 내각을 구성하고 각 부서장관들을 임명하며 정부를 이끌고 정책을 집행한다. 입법부 의회는 111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단원제이며 임기 5년으로 지역 선거를 통해 선축된다. 여러 정당이 있지만 정당 정치는 약하고 개인 중심의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 파푸아뉴기니의 경제
파푸아뉴기니의 경제는 자원에 의존하며 농업, 광업, 에너지 자원이 주요 산업이다. 자원이 풍부한 파푸아뉴기니는 광업이 발달해있으며 금, 구리, 천연가스와 석유 등의 자원은 중요 수출품이다. 농업은 커피, 야자유, 코코아, 땅콩 등과 같은 농산물을 수출하여 국가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해양 자원 또한 풍부하여 어업과 수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통신, 금융, 소매업 등과 같은 서비스 산업과 제조업은 상대적으로 약하며 관광업 또한 낙후된 인프라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2023년 파푸아뉴기니의 GDP는 30억 3천만 달러(한화 40조 6천억원) 정도로서 전 세계 140 위권에 해당하는 경제 규모이다.
3. 파푸아뉴기니의 유적지와 자연 경관
- 파푸아뉴기니의 유적지
파푸아뉴기니에는 고대 원주민 유적지, 2차 세계 대전 유적지 등 여러 유적지들이 있다. 에핑(Eping) 지역의 고대 돌 구조물은 고대 원주민들의 수백년에 걸친 정착지로서 돌로된 기념물과 기념비들이 있다. 동부 뉴기니의 카마두(Kamadou)는 고대 석기 문화를 보여주는 곳으로서 석기 도구와 주거지 흔적들이 있다. 파푸아뉴기니는 1천개 이상의 부족과 850개 이상의 언어를 가진 나라이다. 따라서 수많은 산호섬과 해변에는 고대 문화와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트레커족(Trekker)과 같은 원주민들은 수백년 동안 전통을 유지하여왔으며 마을에서는 고대 건축 방식과 고유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포트모레스비 박물관(National Museum and Art Gallery)에는 파푸아뉴기니의 역사적 유물들을 전시하였으며 아카나리 박물관(Akana Museum)에는 고대 석기와 토착 부족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미리(Miri)에는 고대 도로와 인공 구조물, 고대 문명의 흔적인 토기, 도자기 유물들이 있다. 라바울(Rabaul), 브고부(Bougainville), 트레일(Kokoda Trail) 등과 같은 2차 세계 대전의 전쟁과 관련된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라바울에는 일본군의 해상 전투기와 전투 차량에 관한 유물들이 남아있고, 브고부에는 전투와 관련된 폭격기, 전투장소, 전투 너털 등이 보존되어 있다. 이처럼 파푸아뉴기니는 다양한 고대 유적지와 전쟁 유적지, 문화 유산이 보존되어 관광객들에게 역사적 체험을 제공한다.
- 파푸아뉴기니의 자연 경관
세계 2번째로 큰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에, 파푸아뉴기니는 내륙과 바다,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경관을 풍부하게 소유한 나라이다. 파푸아뉴기니의 내륙은 울창한 열대우림으로 덮여있다. 특히 파푸아뉴기니를 가로지르는 중앙의 토르레스 산맥(Torres Mountains)은 산악 호수와 고산 식물들로 인하여 아름 다운 산악 경관을 자랑한다. 가장 높은 산은 4.509m의 고가토우 산(Mount Wilhelm)이며 고산 지대에 위치한 레트 마운틴 호수(Lake Lantomo)와 위그리 호수(Lake Wiwa)가 유명하다. 또한 파푸아뉴기니 남부의 가들 강(Gulf of Papua),
세계에서 가장 긴 강 중 하나인 북부의 파푸아 강(Sepik River) 도 유명하다. 파푸아뉴기니는 총 5.308km의 해안선을 가진 나라로서 대양과 많은 섬들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에키루에르섬, 마누스섬, 부겐빌섬 등이 유명하며 방대한 산호초와 청정 해변은 아름다운 해양 생태계를 자랑한다. 또한 파푸아뉴기니는 화산섬으로서 여러 활화산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태평양의 불의 고리(The Ring of Fire)에 위치한 관계로 지열 활동이 활발하며 이러한 화산 활동으로 인하여 화산섬과 화산 지형이 형성되었다. 동부의 라바울(Rabaul)에는 택우카 산(Tavurvur), 탐보 산(Tambu)이 유명하며 이 산들은 활화산으로서 지금도 화산 분출이 일어나고 있다.
바다의 미로에 갇힌 나라, 파푸아뉴기니는 고립된 섬과 풍부한 자연, 미지의 세계 처럼 느껴지는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바다로 둘러싸인 신비로운 매력을 가진 나라이다. 파푸아뉴기니는 자연의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나라이며 산과 강, 해안선과 해변, 바다와 화산 등 다양한 자연 경관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치안문제, 전기, 통신, 공항, 도로, 선박, 숙박 시설과 같은 관광 인프라와 기반 시설이 상대적으로 낙후되고 제한적이라 관광업이 크게 성장하지는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