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스럽고 품위있는 럭셔리한 나라, 모나코의 정식 명칭은 모나코 공국(Principaute de Monaco)이다. 모나코가 공국(Principality)인 이유는 왕(King)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닌, 공작(Prince)이 통치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공국은 왕국보다 작은 영토에서 왕 대신 공작(Prince)이 통치하는 국가 형태이다. 모나코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헤라클레스와 관련이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현재 모나코 공국을 헤라클레스 모노이코스(Herakles Monoikos)라고 불렀다. 모노이코스(Monoikos)는 고립된, 단하나의 집이란 뜻으로서 헤라클레스가 혼자 여기에 머물렀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로마인들은 모노이코스를 그대로 받아들여 불렀고 이것이 모나코(Monaco)로 간소하게 변화되어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모나코는 맑고 푸른 하늘과 황금빛 해살이 비추어지는 광경을 자주 경험할 수 있는 나라로서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화려함과 고급스럽고 깨끗한 환경을 자랑한다. 모나코 공국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며 영어와 이탈리아어도 널리 사용된다. 또한 모나코의 전통 언어인 모네가스크어(Monegasque)도 일부에서 사용되고 있다. 모나코 공국은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작은 공국으로서 역사적으로 프랑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기에 프랑스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모네가스크어는 리구리아어(Liguria) 계통의 로망스어(Romance languages)이며, 로망스어는 이탈리아어 계통에 속한 언어이다. 따라서 모네가스크어는 이탈리아의 북서부의 리구리아 지역의 언어와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 지역 언어의 영향을 받았다. 로망스어란, 라틴어에서 발전된 언어 그룹을 말한다. 고대 로마 제국의 정복 정책에 따라 라틴어가 여러 나라와 지역에 퍼짐으로서, 나라와 지역에 따라 변형되어 사용되었는데, 로망스어는 그 언어들 중 한 계열을 말한다. 로망스어 계열에는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 카탈로니아어, 갈리시아어 등이 있으며 모나코의 모네가스크어는 바로 이 로망스어의 계열에 속한다.
1. 모나코 공국의 영토와 수도, 인구와 인종
모나코는 유럽의 남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작은 공국이며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한다. 모나코는 바티칸 시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작은 독립 국가이며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나라이다. 모나코의 면적은 2.02 제곱킬로미터이며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생활 수준은 매우 고급스럽다. 북쪽과 동쪽은 프랑스와 5.47km의 매우 짧은 국경을 마주하며, 서쪽과 남쪽은 지중해의 해안선으로 이루어졌다. 모나코는 크게 역사적 중심지인 로셰트(Le Rocher), 카지노로 유명한 몬테카를로(Monte Carlo), 항구지역인 라콩담(La Condamine), 정치 중심지인 미칼(Monaco-Ville) 등 4개의 지역으로 구분된다. 모나코는 작은 도시 국가로서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인프라 또한 고급스럽게 발달되어 있다. 모나코 공국의 수도는 모나코 시(Monaco)이다. 모나코는 단일 도시 국가이기에 수도와 나라가 동일하다. 2023년 기준, 모나코 인구는 2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안에 3만 9천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모나코는 주로 모나코인(Monegasques)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인구의 21%를 차지한다. 프랑스계가 30~35%, 이탈리아계 15%, 영국, 스위스 등 유럽계 25~30%, 그외 다양한 외국계가 있다.
2. 모나코 공국의 역사, 정치, 경제
- 모나코 공국의 역사
모나코의 역사는 약 2천 6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고대 정착민 시대, 로마와 초기 중세, 그리말디 가문의 통치시대, 근대와 프랑스 보호국 시대, 20세기와 현대로 구분된다. 모나코에 사람이 정착하여 거주한 시기는 대략 B.C.600년으로 알려져있으며 모나코의 역사는 그리스 식민지로부터 시작된다. B.C.600년경 그리스 선원들과 그리스의 정착민들이 모노이코스라는 식민지를 모나코에 건설하였으며 이 모노이코스라는 이름은 지금의 모나코의 기원이 되었다. 그리스 정착민들은 그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지중해 연안을 따라 무역의 중심지로 모나코를 세워나갔다. B.C.120년경, 로마는 모나코를 비롯하여 리구리아 지역(프랑스에서 이탈리아 북부까지 이어지는 지중해의 해안선)을 식민지로 삼았다. 모나코는 로마 제국의 군사적, 상업적 무역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이지역의 원주민들은 로마의 시민권까지 부여받았다. 이러한 로마 제국의 모나코 지배는 A.D.5세기까지 지속되었다. 476년 서, 로마가 멸망하면서 모나코는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모나코는 계속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게된다. 비록 서로마는 멸망하였지만 비잔틴 제국이라 불려졌던 동로마 제국은 계속하여 지중해 동부와 일부 이탈리아 반도를 지배하고 있었다. 552년, 비잔틴 제국은 모나코를 비잔틴 제국의 영토에 편입시켰으며 이 지역에 군사적 기지를 건설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비잔틴 제국은 이탈리아와 서 유럽 일부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여 8세기 초까지 실질적으로 모나코를 지배하였다. 5세기 말부터 북유럽에서 기원한, 게르만 민족의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 반도로 이동하여 정착하였다. 568년, 롬바르드족은 이곳에 롬바르드 왕국(Kingdom of the Lombards)을 세웠으며 비잔틴 제국이 지배하였던 이탈리아북부와 중부를 침략하여 정복하였고 7세기까지 이탈리아의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때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계선에 위치한 모나코 또한 롬바르드 왕국의 영향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시기 프랑크 왕국은 롬바르드 왕국의 확장을 막고자 견제하게되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카롤 대제(Charlemagne)의 조부였던 샤를 마르텔(Charles Martel)이다. 8세기 초, 샤를 마르텔은 롬바르드 왕국과의 전쟁을 통해 이탈리아에 대한 프랑크 왕국의 영향력을 확대시켜나갔으며 이 과정에서 모나코는 프랑크 왕국의 영향아래 놓이게 되었다. 샤를 마르텔의 손자 카롤 대제 (Carolus Magnus, 카를로스 대제)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첫번째 황제로 즉위하였고 서유럽 전역을 정복함으로서 프랑크 왕국을 대제국으로 확장시켰다. 이러한 카롤 대제에 의하여 774년, 롬바르드 왕국도 완전히 정복되었으며 모나코 또한 카롤 대제의 지배와 행정적 통제아래 놓이게 되었다. 9세기, 모나코는 프랑크 왕국의 통제아래 교황정과도 연결되었으며 서유럽의 여러 기독교 나라와 세력들과도 가까워졌다. 그리하여 모나코는 도시 국가이면서도 정치적 독립보다는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다. 10세기, 프랑크 왕국은 서 유럽 전역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비잔틴 제국(동로마)은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역과 동유럽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는데, 이 두 세력은 지중해와 남부 유럽을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 이시기 모나코는 프랑크 왕국과는 관계가 약해졌고 비잔틴 제국의 강력한 영향을 받게되어 군사적, 경제적 측면에서 비잔틴 제국과 동맹을 맺게되었다. 그리고 10세기 중반에와서는 비잔틴 제국의 영향에서도 벗어나 독립성을 추구하기 시작하여 지방 세력으로서 자리잡게되었으며 자치권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0세기 말부터, 11세기 초,이탈리아 서북부에서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제노바 공국이 들어섰다. 11세기 말부터 강력한 해상 세력으로 자라난 제노바 공국은 지중해 연안의 주요 도시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하였으며 무역의 거점과 군사적 요충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모나코와 같은 여러 작은 도시 국가들을 통제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모나코 또한 제노바 공국의 압박을 받았으며 결국 제노바 공국의 지배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시기 이탈리아 북부의 리구리아 지역에서는 그리말디 가문이 서서히 정치적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말디 가문은 제노바(Genoa) 근처의 몬테마르티네 지역의 그리말디 성(Castello Grimaldi)에서 유래한 이름이며, 그리말디는 그 성의 성주였다. 그리말디 가문은 13세기말에 정치적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1297년, 제노바의 지배를 받고 있던 모나코에, 프란체스코 그리말디(Francesco Grimaldi)와 그의 추종자들이 수도승으로 변장하여 모나코 성안으로 잠입하였고 성문을 열어, 밖에서 대기하였던 그의 추종자들이 성안으로 들어와 제노바 군의 수비대를 물리쳐 점령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700년 동안 모나코는 그리말디 가문의 통치를 받게되었다. 그리말디 가문은 모나코에 대한 수비를 강화하였고 성 주변 지역을 점차 통제하여 모나코 공국을 확장시켜 나갔다.
1301년, 모나코는 공식적으로 그리말디 가문의 지배를 받게되었으며 프랑스 왕국과의 동맹을 맺고 모나코에 대한 지배권을 더욱 강화해 나갔다. 1331년, 제노바 공국은 모나코를 되찾고자 군사적 압박을 가해왔지만 그리말디 가문은 잘 지켜냈으며 모나코의 독립을 유지하였다. 제노바는 여러차례 더 군사적 압박을 가했지만 그리말디 가문은 외교적 노력과 정치적 동맹을 통해 제노바의 압박을 잘 견디어 냈다. 1346년 제노바와 모나코는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평화 협
정을 체결하게 된다. 이 협정은 제노바가 모나코의 주권을 인정하고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평화 협정에도 불구하고 15세기의 모나코는 제노바와의 정치적 긴장이 지속되었다. 그리하여 그리말디 가문은 1460년, 프랑스와 동맹을 강화하여 제노바와의 관계를 개선하였고 모나코를 더욱 요새화시켰다. 1489년 모나코는 프랑스와 결혼 동맹을 통해 관계를 더욱 강화하였다. 이 결혼 동맹은 샤를 8세(Charles VIII)와 안토니아 그리말디(Antonia Grimaldi)의 결혼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프랑스와 모나코의 정치적 연대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1524년 모나코는, 프랑스의 보호국으로 친밀한 관계로 발전되었으며 여전히 그리말디 가문이 모나코를 독립적을 지배하고 있었다. 16세기의 모나코는 프랑스와의 이러한 친밀한 관계속에 제노바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았으며 상업과 경제적으로 번영을 이루었고 문화와 예술이 발전하게 되었다. 1620년 제노바 공국은 군대를 일으켜 강경한 태도로 모나코를 압박하였다. 그러나 17세기에도 지속된 프랑스와 결혼 동맹으로 모나코는 외교적으로 위기를 잘 대처하였다. 모나코는 프랑스와의 이러한 동맹을 통해 제노바의 압박에 잘 대응하여 큰 충돌없이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프랑스와의 동맹으로 인해 모나코의 정치적 독립성은 약간의 변화가 생겼지만 여전히 그리말디 가문이 통치하였다. 모나코는 계속 프랑스의 보호국 지위를 원하였고, 그리하여 1641, 프랑스는 공식적으로 모나코를 프랑스 왕국의 보호국으로 선언하게 된다. 이때부터 모나코는 프랑스 왕국의 공식적 보호를 받게되었으며 모나코의 정치적, 외교적 독립성은 크게 약화되었지만 그리말디 가문은 여전히 모나코를 지배하게 되었다. 1659년, 모나코는 프랑스와 다시 한번더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페르닌 평화 조약(Peace of the Pyrenees)은 프랑스와 모나코의 관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조약으로서 모나코의 정치, 군사적 관계를 확실히 한 조약이다. 모나코는 독립적 국가의 지위와 외교권을 유지하되 프랑스의 보호를 받는 조건이었다. 이 조약으로 모나코는 프랑스와의 군사적 압박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지만 모나코의 정치적, 외교적 결정은 프랑스의 간섭을 받게되었다. 그리하여 프랑스 왕실은 모나코에 대한 실질적 지배자가 되었다. 17세기 말, 모나코는 해상 무역이 더욱 활발해져서 경제적 번영을 이루게되어 프랑스의 경제적 중심지로 성장하게 되었다. 18세기, 19세기의 모나코는 계속 프랑스의 보호국 지위였으며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간섭을 받고있었다. 또한 1789년부터 1799년에 일어났던 프랑스 혁명으로 인하여 모나코는 프랑스의 직접적 통치를 받게되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프랑스는 왕정이 붕괴되었고 공화정으로 전환되었으며 모나코는 보호국이 아닌 완전한 프랑스의 직접 통치를 받게되었다. 이후, 1804년 12월 2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황제로 즉위하여 나폴레옹 제국이 시작되었다. 1805년, 모나코는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에 합병되어 그리말디 가문은 왕권을 박탈당하였다.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대제국으로 세워가기 위하여 주변의 작은 나라들과 공국들을 통합하였으며 이런 과정에서 모나코 공국도 프랑스 제국에 병합되어 모나코의 자치권과 독립성은 박탈 당하였다. 1812년,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침략하였지만 혹독한의 겨울 날씨로 인해 대패하였고 그로인해 프랑스 제국의 국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또한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등 여러 동맹국들이 나폴레옹과 프랑스를 압박하였고 1813년 10월 16일부터 3일동안 치루어진 독일 지역의 라이프치히 전투(국가들의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군대가 연합군에 대패하게 되었다. 이 전투후 프랑스의 국력과 군사력은 크게 쇠퇴하여, 1814년, 연합군이 다시 프랑스를 공격하였을때는 방어할 수 없어 수도 파리가 함락(1814년 3월 30일)되었다. 그로인해 1814년 4월 6일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황제 자리에서 퇴위 당하여 엘바 섬으로 유배되었으며 프랑스의 왕정이 다시 복원되어 루이 18세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1815년 3월 1일, 나폴레옹은 엘바 섬에서 탈출하여 프랑스 파리로 다시 돌아와 3월 20일에 다시 황제로 즉위하였다. 이일로 주변국들은 다시 연합군(영국, 네델란드,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을 형성하여 나폴레옹에 맞섰다. 1815년 6월 16일, 나폴레옹의 군대는 리니 전투(벨기에의 리니 마을)에서 프로이센 군대를 격퇴하였다. 그리고 영국군과의 전투를 위해 벨기에의 워털루(Waterloo)로 진격하였다. 1815년 6월 18일 워털루에서 나폴레옹 군대는 영국과 프로이센의 연합군과 싸웠지만 대패하였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다시 유배 되었다. 이것을 나폴레옹의 백일 천하라 한다. 이 전쟁 후 유럽의 정치적 재편성을 의논하기 위하여 1814년 9월부터 1815년 6월까지 오스트리아 빈(Vienna)에서 국제 회의가 열렸다. 오스트리아 빈 회의(Congress of Vienna)에서 모나코는 다시 프랑스의 보호국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모나코를 완전한 식민지로 삼지않아야 하며 모나코의 주권과 지배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모나코는 다시 주권을 회복하게 되었고 독립적인 영토와 자치권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나코는 여전히 프랑스의 보호국 지위아래 놓여져 프랑스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다. 빈 회의 이후 모나코의 독립 운동은 18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독립 운동은 그리말디 가문의 주도에 의해 외교적 노력으로 진행되었으며 그러한 노력으로 1861년, 모나코는 프랑스와의 협정을 통해 완전한 독립을 이룰수 있게 되었다. 이 협정을 통해 모나코는 프랑스로부터 보호국이 아닌 완전한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갖게되었다. 이 협정에 따라 모나코의 일부 영토를 프랑스에 양도해야 했으며 프랑스는 여전히 모나코에 대한 외교와 국방의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20세기의 모나코는 경제적 성장을 통해 모나코의 위상을 국제 사회에서 높여갔다. 1949년부터 모나코는 세계적 관광지로 성장하였고 경제적 자립과 성장을 통해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더욱 확고하게 세워나갔다. 현재의 모나코는 프랑스와의 외교적 특별한 관계속에서 독립국의 지위로 존재하며 세계적 금융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 모나코 공국의 정치
모나코의 정치 체제는 그리말디 가문이 통치하는 입헌 군주제이다. 모나코는 왕족들이 통치하는 군주 국가이며 군주가 국가 원수로서 정부를 이끈다. 군주는 내각을 임명하고 내각은 정부의 고위직들로서 군주의 지시를 시행한다. 군주는 정치, 외교, 군사적 정책에 대하여 결정하고 수행하며 법률을 승인하고 새 법안에 대한 제정의 권한도 가진다. 그러나 1962년 헌법의 규정에 따라 군주의 권한이 일정부분 입법기관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입법부 의회는 4년 임기의, 29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정당과 무소속 후보들이 경쟁한다. 의회는 법안을 제정하고 예산을 승인하며 군주와 함께 정치적 결정을 감독한다. 모나코의 사법 체계는 프랑스 법을 채택하고 있지만 독립적 사법부가 운영되고 있다.
- 모나코 공국의 경제
모나코의 경제는 금융 및 은행업, 관광업, 부동산, 세금혜택, 명품 브랜드 산업과 제조업, 농업, 서비스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라는 작지만 모나코는 국제 금융 허브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세금 혜택과 고급 은행 서비스로 유명하여 많은 부자들이 모나코에 자산 관리를 맡기고 있다. 따라서 모나코에는 많은 은행과 금융들이 위치하여 해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자산 관리 및 투자 관련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모나코에는 개인 소득세가 없다. 또한 기업 소득세도 매우 낮기 때문에 이러한 세금 혜택을 받기위하여 부자들이 모나코에 거주하거나 사업을 운영한다. 이러한 모나코는 세금 천국으로 소문나있으며 부자들과 기업들은 세금을 줄이기 위하여 모나코로의 이주가 많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모나코는 이러한 금융과 관련된 서비스 산업이 발달해 있으며 이것은 국가 경제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모나코는 관광업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모나코의 관광 산업은 고급 호텔, 카지노, 쇼핑, 요트, 문화 행사 등 여러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럭셔리한 관광지로 알려져있다. 특히 몬테카를로 카지노는 부유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세계적 요트 항구를 갖춘 모나코는 요트 산업으로도 유명하여 요트 쇼와 같은 큰 행사들이 열리기도 한다. 또한 모나코 그랑프리와 같은 세계적 자동차 경주와 문화 행사를 통해 관광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 면적이 작은 모나코는 부동산 가격이 매우 높은 편이라서 고급 아파트와 빌라 요트 정박지 등과 같은 부동산 산업이 활성화되어 있다. 모나코의 제조업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이지만 패션, 시계, 보석과 같은 고급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한다. 작은 면적을 가진 모나코의 농업은 비중이 매우 적으며 과일과 채소가 주로 재배된다. 2023년 기준, 모나코의 GDP는 80억 달러(한화 10조)로 작은 경제 규모이지만 1인당 GDP는 19만 달러(2억 4천만원) 이상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3. 모나코 공국의 유적지와 자연 경관
- 모나코 공국의 유적지
모나코는 작은 면적에도 불구하고 여러 유적지들이 있다. 모나코의 유적지들은 로카지역에 몰려있다. 로카 지역(The Rock of Monaco)은 1297년에 그리말디 가문이 처음 모나코를 통치한 곳으로서 모나코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다. 이곳에 모나코 왕궁, 모나코 대성당, 그리말디 박물관 등 중요한 역사적 유적지들이 밀집해있다.
모나코의 로카 지역에 위치한 모나코 왕궁(Prince`s Palace of Monaco)은 지금도 왕가의 공식적 거주지이며 궁전 내부와 정원을 관
람할 수 있고, 매일 12시 정오에는 근위병 교대식도 관람할 수 있다. 모나코 대성당(St. Nicholas Cathedral, 니콜라스 대성당)은 19세기 말에 건축된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혼합 건축물이다. 모나코 박물관(Oceanographic Museum of Monaco)은 해양 박물관으로서 로카 절벽위에 위치하고있다. 모나코 벽화(Monaco`s Murals), 제노바 요새(Genoese Fortifications)와 그 주변의 성벽들은 13세기 제노바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하여 건축되었다.
- 모나코 공국의 자연 경관
모나코가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산악 지형과 해안선을 함께 갖추고 있는 아름다운 나라이다. 모나코의 해안선은 약 5,4km에 불과하지만 청록색의 맑은 바다와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로카 절벽 위에 위치한 모나코 해양 공원(Exotic Garden of Monaco)은 다양한 이국적 식물들로 유명하며 모나코 시내와 지중해의 해안선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모나코는 알프스 산맥의 일부이며 바다와 접한 산악 지형을 가지고 있
다. 따라서 모나코 주변은 고산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알프스 산맥의 다양한 자연 경관을 즐길 수 있다. 모나코 근교에는 자연 보호 구역(Monte Carlo`s Nature Reserve)이 있어서 다양한 자연 환경을 체험할 수 있다. 모나코 항구(Port Hercule)는 비싼 요트들로 가득하며 항구는 평화롭고 아름답다. 항구 주변은 해변과 산책로가 있어서 지중해의 바람을 맞으면서 멋진 일출과 일몰을 경험할 수 있다. 모나코의 해변에서는 요트 레이스와 모터보트와 같은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즐기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모나코의 기후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이기에 1년 내내 관광하기 좋은 날씨를 유지한다. 모나코는 관광지로 큰 매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며 특히 고급 카지노 몬테 카를로 카지노와 모나코 대성당, 해양 박물관, 모나코 왕궁은 중요한 관광 명소이다.
고급스럽고 품위있는 럭셔리한 나라, 모나코는 작지만 강력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이며 특이한 특성을 가진 국가로서 세계 그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멋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나라이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작은 나라이지만 이러한 나라가 어떻게 큰 영향을 전 세계에 미칠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나라이다. 호화롭고, 품격있고, 사치스럽고, 고급스러우면서도 우아함을 가진 나라이다.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서 한단계 높은 품격을 보여주는 특별한 나라 모나코는 지중해의 작은 보석이란 말은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단순한 정치적, 경제적 이미지에 잡혀있는 나라가 아닌 럭셔리함과 우아함으로 세련되고 화려함을 드러내는 문화의 나라이기도 하다. 몬테 카를로 카지노의 금빛 칩 소리, 그리말디 궁전의 황금빛 문, 지중해의 저녁 햇살이 모나코를 비출때 시간이 멈추듯 모나코는 세상의 축소판이되어 그 세련되고, 화려함을 밤으로 조용히 드러내는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