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광석의 나라, 나우루(Nauru) 공화국은 바티칸 시국(0.49 제곱킬로미터, 1위), 모나코(2.02 제곱킬로미터, 2위)에 이어, 면적이 21 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한, 세계에서 세번째로 작은 독립국가이다. 나우루라는 이름은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나우루어로 해안으로 간다 혹은 해안을 따라서, 라는 뜻으로서 해안가를 따라 이동하는 나우루 원주민들의 생활 방식을 반영한 이름이다. 1798년, 영국의 존 피어른(John Fearn) 선장이 나우루를 발견한 후 즐거운 섬(Pleasant Island)이라고 이름을 붙인후 이 섬에 대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나 즐거운 섬이란 이름은 공식화되지 못하였고 원주민들이 사용하였던 나우루로 불려지게 되었다.
이 이름은, 19세기, 독일 식민지때는 독일식 표기법을 따라 나우~루(Nauru)로 표기되었고 현재는 영어로 나우~루(Nauru)로 발음한다. 나우루의 공용어는 영어와 나우루어(Nauruan)이다. 영어는 정부, 교육, 법률, 비즈니스 등 공적 일과 문서 그리고 일상적 생활에서도 널리 사용되며 나우루어는 전통적 언어로서 주로 가정에서 사용된다. 나우루어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하는 언어 중 하나로서 중앙 태평양 어군(Central Pacific Group)에 속하며 폴리네시아어군(Polynesian languages)에 가깝다. 그러나 폴리네시아 언어에 속한 것은 아니며 상호작용은 하지만 상당한 차별된 특징들을 지닌다.
1. 나우루 공화국의 영토와 수도, 인구와 인종
- 나우루 공화국의 영토와 수도
세계에서 세번째로 작은 면적을 가진 나우루는 태평양 중부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이며 총 면적은 21 제곱킬로미터이다. 나우루는 인광석으로 유명한 나라이며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섬으로서 최고 높은 지역은 71m이다. 지형은 중앙 고지대와 평평한 해안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우루의 총 해안선의 길이는 24.9km로서 섬의 면적에 비하여 짧은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또한 경제적 배타 수역(EEZ)은 200해리(370km)로서 풍부한 해양 자원을 통해 경제적 수익을 얻고있다. 나우루의 수도는 섬의 남서쪽에 위치한 면적 2.5 제곱킬로미터의 작은 마을 아이리(Yaren)이다. 아이리의 과거 이름은 야렌(Yaren)이었지만 현재는 아이리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수도 아이리에는 주요 정부기관들과 행정 기관들, 국회의사당, 행정부 등 중요한 시설들이 집중되어 있다. 또한 이곳 수도에 나우루 인구 1만 2천명 중 1/3에 해당하는 4천명에서 5천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수도 아이리 나우루의 행정, 문화, 경제의 중심지이다. 또한 아이리에는 항구가 없어서 외부와의 교통 또한 제한적이며 다른 국가들과의 이동은 주로 공항을 통해 이루어진다.
- 나우루 공화국의 인구와 인종
2023년 기준, 나우루의 인구는 1만 2천명 정도로서 인구가 적고 대부분의 주민들이 한지역에 밀집되어 살고있다. 나우루의 인종 구성은 60%가 나우루인(Nauruan)들로 구성되었으며 30%는 그외에 소수의 다양한 민족(파푸아뉴기니, 솔로몬제도, 피지, 통가, 사모아 등)들이 거주하고 있고 약 7%는 유럽계(독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3%는 중국계와 아시아계가 살고있다.
2. 나우루의 역사, 정치, 경제, 교육
- 나우루의 역사
나우루의 역사는 고대 원주민 정착기, 근대와 식민지, 독립과 현대로 구분된다. B.C.3,000년에서 1,000년사이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하는 나우루인들이 이곳에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고대의 나우루는 12개의 부족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섬이 작고 한정된 자원으로 인하여, 섬에 정착한 부족들은 서로 경쟁하며 전투가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12개의 부족은, 데이보(Daeveo), 에오르루(Eoraru), 이벤(Iben), 이로제(Iroo), 이부메리(Ibumere), 카이보(Kaibe), 메나크(Meneng), 란토란트(Rantorrant), 에베이(Ebeo), 부아테(Buate), 야렌(Yaren)이다. 나우루의 이, 12 부족은 19세기, 식민지 시대 이전까지 강하게 남아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1888년), 나우루가 독일의 식민지가 되면서 전통적 부족사회는 서구적 사회 체제로 변화되었다. 따라서 나우루의 12개 부족 체계는 수천년 동안 보존되어 오다 19세기 식민지화 되면서 소멸되었다.
1798년, 영국의 탐험가 존 피어른(John Fearn)이 그의 상선 헌터(Hunter)호를 타고 태평양을 항해하는 도중 나우루를 처음 발견하였다. 존 피어른은 나우루의 원주민들이 웃으며 친절하고 대우하여 그 섬을 즐거운 섬(Pleasant Island)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후 나우루는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고 여러 유럽 국가들이 나우루를 탐험하게 되었다. 19세기 초반, 포경업자와 상인들이 나우루를 방문하기 시작하여, 섬에 머물기도 하고 원주민들과 물물교환을 통해 무역도 이루어졌다. 1870년, 유럽 상인들이 나우루 섬에 무기를 공급하면서 12 부족들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었고 그로 인하여 내전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 내전은 10년 동안 지속되었고 내전으로 인하여 나우루 인구는 감소되었으며 12개의 부족 체제도 약화되었다. 19세기 후반, 독일은 태평양으로 식민지 정책을 확대하려는 계획을 시도하였다. 그로인하여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제도, 미크로네시아, 마셜제도, 나우루 등 여러 태평양의 섬들을 식민지화 하였다. 이때 독일은 나우루를 경제적, 군사적 거점으로 삼고자 하였다. 때마침 나우루에는 12개 부족간의 내전이 발생하였고 독일은 이것을 명분으로 삼아 나우루의 내전에 개입하였다. 또한 나우루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1888년, 나우루를 독일의 보호령으로 선포하였다. 이것으로 나우루는 독일 제국의 보호령으로 편입되어 1914년, 1차 세계 대전까지 식민지가 되었다. 독일군은 나우루에 주둔하면서 독일 국기를 게양하였고 부족 간의 내전을 중재하였으며 독일식 행정 체제를 구축하였다. 또한 기독교 선교사들이 들어와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통해 기독교가 전파되었고 그로인하여 전통 신앙은 퇴보되었으며 전통적 12 부족 체제도 약화되었다. 1899년, 독일의 광산 회사가
나우루에서 인산염(인광석)을 발견하여 나우루는 경제적 가치가 급성장하였다. 독일은 인광석을 채굴하였고 나우루는 독일의 통치속에 자원을 약탈당하게 되었다. 인광석으로 인하여 독일은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게되었고 나우루는 식민지 경제의 중요한 자원 공급지가 되었다. 1차 세계 대전은 나우루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 1914년,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의 식민지였던 나우루는 연합국의 타격 목표가 되었다. 연합군은 빠르게 태평양의 독일 식민지들을 점령하기 시
작하였고 그로인하여 1914년 11월 나우루 또한 호주 해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 이로인하여 나우루의 독일 통치는 끝나게 된다. 1918년 11월 11일 독일이 연합국과 컴피엔 정전 협정(Armistice of Compiegne)에 서명함으로서 1차 세계 대전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1년 뒤, 1919년 파리 평화 협정에서 독일의 식민지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때 국제 연맹(League of Nations)에 의하여 나우루는 호주, 영국, 뉴질랜드 3국의 공동 위임(신탁) 통치령(Mandate Territory)으로 지정되었다. 그리하여 1919년부터 1968년까지 나우루는 이 세나라(호주, 영국, 뉴질랜드)에 의해 공동으로 관리되었다. 공식적으로 나우루는 연합국의 통치하에 놓였으며 행정은 호주가 담당하게 되었다. 이시기 나우루는 인광석의 채굴이 증가함으로서 경제가 크게 성장하였다. 이때 나우루 인산염 위원회(British Phosphate Commission, BPC)가 설립되어 인광석 채굴과 수익 분배를 관리하였다. 이로인하여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주가 많아졌고 산업화로 인하여 작은 섬나라였던 나우루의 환경은 파괴되고 있었다. 이 인광석 채굴은 호주, 영국, 뉴질랜드, 이 세 국가가 공동으로 관리하였으며 대부분의 수익은 나우루 밖으로 유출되었다. 1942년 8월, 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은 태평양 지역으로 군사적 팽창을 목표로 진출하고 있었다. 일본은 여러 태평양의 섬들을 점령하였으며 나우로 또한 일본에 의해 점령되어 일본의 군사적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일본은 나우루의 인광석을 채굴하여 군수물자 생산에 활용하였으며 이때 나우루 원주민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노역과 고문, 폭력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게되었다. 이시기 나우루 원주민들은 일본의 군수 공장에서 일하거나, 강제 노동에 동원되거나, 일본 본토로 강제 이주되어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일본은 나우루의 인광석을 무분별하게 채굴하여 전쟁 자금으로 사용하였으며 그로인하여 나우루의 인광석도 점차 고갈되는 조짐이 보이게 되었다. 2차 세계 대전이 종료(1945년 9월 2일)된, 하루 뒤 1945년, 9월 3일, 호주군과 뉴질랜드 군은 나우루를 다시 탈환하였지만 나우루는 전쟁과 일본의 통치로 인하여 많은 피해와 경제적 타격을 입게되었다. 2차 세계 대전 후에도 나우루는 호주와 영국, 뉴질랜드에 의하여 국제 연맹의 결정에 따라 공동 위임 통치가 이루어졌다. 나우루는 3국의 위임 통치속에서 경제적 복구와 재건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인광석(인산염)을 다시 채굴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경제가 재건되기 시작하였지만 대부분의 수익금은 나우루 외부로 흘러나갔다. 1950년대부터 나우루 원주민들은 경제적, 정치적 자치와 독립을 위해 소리를 높이며 행동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인광석에 대한 공정한 분배를 요구하면서 해머 더로비(Hammer DeRoburt)와 같은 지도자들이 자치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해머 더로비는 나우루, 독립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1968년 1월 31일, 독립을 선언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이, 해머 데로비가 바로 나우루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나우루의 정치와 경제를 안정 시키고 인광석 채굴을 국가 산업의 경제 정책으로 추진했던 인물이다. 이러한 독립 운동은 무력이 아닌, 외교적 노력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나우루는 국제적 외교를 통하여 자치권을 더욱 강하게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1966년, 유엔 신탁통치 이사회는 나우루인들이 요구한 독립을 지지하여 자치권을 승인하였다. 2년 후, 1968년 1월 31일 나우루는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 중 하나로 유엔 회원국이 되었다. 독립 이후 나우루는 인광석 채굴로 인하여 1970년대와 80년대는 잠시 동안 경제가 발전을 이루고 번영을 누렸지만 독일과 일본의 식민지 때부터 무분별하고 과도하게 많은 양의 인광석을 채굴하여 결국 자원이 완전히 고갈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1990년대부터 인광석의 채굴 양이 점차 줄어들었고 인광석 채굴 지대는 점차 고갈되었다. 그 결과 1990년 후반부터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극복하고자 나우루는 해양 산업, 국제적 화물 수송, 해외 금융 사업등과 같은, 산업화의 다각화를 여러 다양한 분야로 전환을 시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2000년대를 들어서면서 나우루는 경제 위기,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로 인하여 삼중고를 겪고있다. 이때 호주는 나우루에 난민 수용소를 제안하였다. 호주는 자국의 불법 이민을 방지하기 위하여 외부 난민 수용소를 계획하여 정책화 하였고 그 장소를 나우루로 정하여 2012년 나우루와 협정(나우루 협정, 또는 나우루 난민 처리 협정, Nauru Regional Processing Centre Agreement)을 체결하였다. 주로 보트를 타고 밀입국한 불법 이민자들을 호주 정부는 나우루로, 이들을 보내었으며 나우루는 호주와 협력하면서 난민 수용소를 운영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나우루는 호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게되었지만, 이들 난민들로 인하여 나우루 원주민들은 사회적, 정치적 갈등으로 고통을 겪어야만 하였다.
- 나우루의 정치
나우루는 세계에서 세번째로 작은 공화국으로서 단순한 정치 구조를가지고 있으며 정치 체제는 대통령제 공화국이며 대통령과 국회가 국가를 운영한다. 4년 임기의 대통령은 국가의 수반이며 최고 지도자로서 국회 의원들 중에서 국회로부터 선출된다. 정부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정부의 각 기관은 대통령의 지도 아래 운영된다. 임기 4년의 의회는 19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단원제이며 국민이 선출한다.
- 나우루의 경제
나우루의 경제는 인광석(인산염)에 크게 의존해 왔지만 인광석의 고갈로 인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있다. 2012년 나우루와 협정(나우루 협정, 또는 나우루 난민 처리 협정, Nauru Regional Processing Centre Agreement)을 통해 호주와 협력하면서 난민 수용소를 운영하여 호주, 영국, 뉴질랜드로부터 난민 수용소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받고있다. 이로인하여 일정한 외화 수입이 생겼지만 이것은 국제적 논란 거리가 되었다. 나우루의 농업과 어업 또한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제한적 자원으로 인하여 큰 기여를 하지는 못하고 있다. 2023년 기준, 나우루의 GDP는 2억달러(한화로 2,700억원)로 작은 경제 규모이며 이것은 전 세계 GDP에 들지도 못하는 경제 규모이다. 2020년대부터 나우루는 경제의 다변화, 다각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 나우루의 교육
나우루의 교육 체계는 초등, 중등, 고등학교로 구분되며 고등 교육은 해외 유학을 통해 이루어진다. 초등학교는 6년 과정이며 수학, 언어, 과학, 사회와 같은 기초 과목으로 진행된다. 중등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통해 대학 진학보다는 기술 교육, 직업 교육을 선호한다. 나우루에는 고등 교육 기관(대학교)가 없으며 대부분 호주,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등과 같은 해외 유학을 통해 교육이 이루어진다. 나우루 정부는 해외 유학생들에게 유학 장학금을 지원하여 학생들이 학위를 취득하도록 돕는다.
3. 나우루의 유적지와 자연 경관
- 나우루의 유적지
나우루 공화국에는 유적지가 많지는 않지만 몇몇 전통적, 역사적 유적지들이 존재한다. 고대 부족 사회와 관련된 유적들은 타우나타(Tautu) 부족과 베가(Bega) 부족들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들 고대 나우루 원주민들의 전통 집, 제단의 흔적이 있다. 이들 두 부족은 고대 나우루의 복잡한 부족 구조로 인하여 고대 12 부족에 들지는 않는다. 나우루 박물관(Nauru Museum)에는 나우루 역사와 문화를 기념하는 곳으로서 원주민의 문화, 식민지 시대, 인광석 채굴에 대한 것들로 진열되어 있다. 나우루에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이 만든, 벙커, 해안 방어 시설과 같은 일본의 군사적 유적지들이 있다. 또한 나우루 전역에는 전쟁 기념비가 세워져있는데 이것은 일본의 식민지때 나우루 원주민들의 고난을 기념하는 기념비이다. 또한 독일과 일본, 호주와 뉴질랜드에 의해 인광석이 채굴되었던 광산과 관련된 유적지들이 남아있다. 이곳은 나우루 남부 지역에 주로 있으며 채굴 작업을 위해 설치된 굴착 기계와 시설물들이 그대로 있지만 환경 오염으로 여러곳이 파괴되었으며 현재는 일부가 복원된 상태이다. 또한 2012년부터 운영된 난민 수용소와 관련된 장소들도 있다.
- 나우루의 자연 경관
나우루는 길이 21km, 너비 6km인,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작은 섬나라이지만 산과 구릉지대, 바다와 해안, 열대 해양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랑한다. 섬 안에는 여러 구릉지대와 고지대가 있으며 그 중 가장 높은 산은 71m의 넬슨 산(Nelson Hill)으로서 이곳에서 나우루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또한 섬 안에는 몇몇 작은 호수와 습지가 있다. 나우루 서북쪽에는 메나브 호수(Meneng Lake), 나우루 중앙에 위치한 부아다 호수(Buada Lagoon)가 그것이다. 이 호수들은 습지 형태
로 형성되었으며 염수와 담수가 섞여진 상태이다. 나우루는 태평양의 맑고 투명한 초록색의 바다로 둘러싸였으며 산호초와 해양 생물이 잘 보존된 곳이다. 나우루의 모든 해변에서는 해양 스포츠와 휴양을 즐길 만큼 맑은 바다와 부드러운 백사장이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나우루 남동쪽에 있는 아이시 모스트 해변(Aisai Beach), 나우루 북동쪽의 데어드 비치(Deirib Beach), 나우루 남쪽의 블루 라군(Blue Lagoon) 등이 유명하다.
세계에서 세번째로 작은 인광석의 나라 나우루는 태평양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무분별한 인광석의 채굴로 인하여 환경은 파괴되었고, 여러 지역이 사막화가 이루어진 상태이며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또한 나우루 내륙에 있는 몇몇 작은 호수들은 습지 형태로 존재하였지만 인광석 채굴 이후 이들 호수들과 환경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근래에는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해수면 상승과 강한 폭풍, 자연 재해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기우 변화는 나우루 해변과 내륙의 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우루 정부는 독립국으로서 자주적 정체성을 가지고 국제적 규약에 따라 환경 보호와 해양 생물 보호를 위해 여러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으며 국제적 여러 기구들과 협력을 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