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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솔로몬 제도, 금광의 전설을 가진 나라

by 돌야dolya100 2024. 11. 3.

금광의 전설을 가진 솔로몬 제도의 정식 명칭은 솔로몬 제도(Solomon Islands)이다. 솔로몬 제도라는 명칭은 스페인 탐험가였던 알바로 데 멘다냐(Alvaro de Mendana)가 이 지역의 900개의 섬을 발견한 후 붙인 이름이다. 1568년, "멘다냐"는 태평양을 항해하는 도중 솔로몬 제도를 발견하였다. 이 섬이 성경의 솔로몬이 가진 금처럼 많은 금들이 있을 것이라 여겨 이름을 솔로몬 제도(Islas de Salomon)라 불렀다. 솔로몬 제도의 공식적 언어는 원주민 언어인 크레올어(피진어, Pijin)와 영어이다. 영어는 정부, 문서, 행정, 교육, 비즈니스 등 다양한 공식적 분야에서 사용된다. 솔로몬 제도에는 멜라네시아어 계열에 속하는 70개 이상의 토착 언어가 있다.

솔로몬 제도 지도

피진어인, 크레올어는 여러 언어가 섞여서 형성된 새로운 언어를 말한다. 특히 피진어는 식민지 상황에서 많이 생겨났으며 무역을 통해서 생겨나기도 한다. 대표적 크레올 언어로는 하와이안 피진(Hawaiian Pidgin), 카리브 피진(Creole languages in the Caribbean), 솔로몬 피진(Solomon Pijin) 등이 있다. 솔로몬 제도의 크레올어는 멜라네시아어 계열에 속하며 멜라네이사어는 태평양의 여러 섬들과 오세아니아의 섬들 즉,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제도, 바누아투, 피지, 뉴칼레도니아 등에서 사용된다. 멜라네시아 언어는 오스트로네이사어에서 파생된 언어로서, 멜라네시아 지역의 섬들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파푸아뉴기니 언어로 나누어진다. 특히 솔로몬 제도에서는 약 70개의 멜라네시아계 언어들이 사용된다.

 

1. 솔로몬 제도의 영토와 수도, 인구와 인종

- 솔로몬 제도의 영토와 수도

솔로몬 제도 산타이사벨 섬

금광의 전설을 가진 솔로몬 제도는 약 900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주요 섬으로는 가다르카섬(Ghizo Island), 마노마 섬(Manoma Island), 산타이사벨 섬(Santa Isabel), 말라이타 섬(Malaita), 보르나 섬(Born Island)이 있다. 가다르카섬의 면적은 26.4 제곱킬로미터이며, 2023년 기준, 인구는 8만 5천명이 거주한다. 주요 도시는 수도인 호니아라(Honiara)와 고자(Gizo)이며 수도인 호니아라는 정치, 경제, 문화, 상업의 중심지로서 면적은 22.7 제곱킬로미터, 인구는 2023년 기준 6천명이 거주한다. 산타이사벨섬의 면적은 3,132 제곱킬로미터이며 2023년 기준, 2만명이 거주하며 위나(Wagina)와 같은 작은 도시가 있다. 말라이타섬(Malaita)의 면적은 약 4,225 제곱킬로미터이며 2023년 기준, 인구는 15만명이 거주하며 주요 도시는 아레아이(Aleai)가 있다.

- 솔로몬 제도의 인구와 인종 비율

2023년 기준, 솔로몬 제도의 전체 인구는 약 7십만명 정도이며 인종 비율은 멜라네시아계가 전체 인구의 93%를 차지한다. 그리고 폴리네시아계가 4%, 유럽계(영국과 호주)와 아시아계(중국계)가 3%를 차지한다.

 

2. 솔로몬 제도의 역사, 정치, 경제, 교육

- 솔로몬 제도의 역사

솔로몬 제도 고대 원주민들

솔로몬 제도의 역사는 고대 원주민들의 정착기, 유럽 탐험과 식민지, 영국 식민지, 2차 세계 대전과 독립, 현대로 나눌 수 있다. B.C.3000년에서 1000년 사이, 지금의 말레이시아와 태국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 지금의 폴리네시아 지역으로 아주 오랫동안 이주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미크로네시아와 멜라네시아 지역 등 태평양의 여러 섬들(파푸아뉴기니, 솔로몬제도, 바누아투, 뉴칼레도니아, 피지 등)로 흩어져 정착하게 되었는데, 솔로몬 제도에 정착한 원주민들

솔로몬 제도 고대 부족장

은 오스트로네시아계 멜라네시아인들이다. 멜라네시아인들은 검고 어두운 피부와 굵은 체격, 곱슬머리가 특징이다. 이들 원주민들은 솔로몬 제도의 각 섬에 정착하여 족장(Chief)이 지배하는, 각자의 부족 사회를 형성하였으며 주요 부족으로는 가다르카 부족(Ghazian), 말라이타 부족(Malaita), 산타이사벨 부족(Santa Isabel), 솔로몬 부족(Solomon Islanders) 등이 있다. 이들 부족들은 자원과 토지를 놓고 경쟁하며 전투와 무역을 통해 아주 오랜세월 공존하여왔다. 16세기 중반, 1568년

솔로몬 제도 고대 유적지

스페인 탐험가였던 알바로 데 멘다냐(Alvaro de Mendana)가 솔로몬 제도를 처음 발견하여 탐험을 하게되었다. 16세기의 스페인은 식민지 확장을 위하여 활발하게 태평양을 탐험하였으며 알바로 데 멘다냐는 그 탐험가들 중 한 사람이었다. 스페인은 동아시아와의 무역 항로와 거점을 확보하려고 태평양의 섬들을 탐험하였으며 "멘다냐"는 이러한 배경속에서 솔로몬 제도를 발견하게 된다. 첫번째 탐험 27년 후인 1595년, "멘다냐"는 두번째 솔로몬 제도를 방문하게 된다. 이때 솔로몬 제도에 확실한 식민지를 건설하는것과 자원 탐색을 목적으로 방문하였지만 원주민들의 반발과 여러 자연 환경적 어려움이 겹쳐 성공하지 못하였다. 1600년대초, 네델란드 동인도 회사의 탐험가들이 솔로몬 제도를 탐험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1642년, 아벨타스만(Abel Tasman)이 솔로몬 제도를 탐함하였고, 1699년 영국의 탐험가이며 해적이었던 윌리엄 댄프(William Dampier)가 솔로몬 제도를 탐험하였다. 1700년대 초, 동인도 회사의 탐험가였던 데이비드 뱀포드(David Bampfield)가 솔로몬 제도를 탐험하였고 원주민들과 교류하였다. 1774년, 제임스 쿡(James Cook)이 솔로몬 제도를 방문하여 탐험을 하였다. 제임스 쿡이 솔로몬 제도를 탐험할때 원주민들과 갈등이 생겼고 결국 소규모 전투로 이어졌다. 영국은 태평양의 여러 섬들에 대한 식민지를 공식적으로 건설하였고 그 식민지 중 하나가 솔로몬 제도였다. 1840년대부터 솔로몬 제도에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영국 성공회 선교사였던 존 스튜어트(John Stewart)는 솔로몬 제도를 비롯하여 멜라네시아 지역의 많은 섬들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1894년, 제칠일 안식교(Seventh-day Adventist Church)의 에드워드 스튜어트(Edward Stewart)가 솔로몬 제도에서 교육과 의료를 통해 선교활동을 하였다. 1846년, 프랑스의 카톨릭 선교사였던 알프레드 마르탱(Alfred Martin)이 솔로몬 제도에서 선교활동을 하였으며 1848년 웨슬리안 선교사 존 도넬리(John Donnelly)가 솔로몬 제도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1893년, 영국은 솔로몬 제도의 여러 섬들에 대한 보호국 지위를 설정하였고 1898년에는 공식적으로 영국 식민지로 솔로몬 제도를 통합하였다. 그리하여 솔로몬 제도는 20세기 중반까지 영국의 통치를 받게된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솔로몬 제도는 연합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장 중 하나였다. 특히 1942년과 1943년 사이에 벌어진 기구시(Guadalcanal) 전투(솔로몬 제도의 남동쪽에 위치한 가장 큰 섬)는 태평양 전쟁의 큰 전환점이 되었던 중요한 전투였다. 기구시 전투의 배경은 1942년 5월, 일본 제국이 주요 해상로와 무역 거점이었던 솔로몬 제도를 정복하려고 공격한데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대하여 미국과 연합군은 점령당한 기구시를 되찾기 위하여 1942년 8월 상륙 작전을 실행하여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는 1943년 2월까지 지속되었지만 연합군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이 전투로 인하여 솔로몬 제도의 원주민들은 많은 피해를 입어야 했으며 종전 후에도 재건 과정에서 장기적인 피해에 시달려야 했다. 2차 세계 대전의 종전 후 많은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을 하게 되었으며 그 영향은 솔로몬 제도 원주민들에게까지 미쳤다. 그리하여 1960년대부터 솔로몬 제도에서도 독립을 향한 요구가 거세게 일어났으며 여러 단체들과 정당들이 조직되어 독립 투쟁을 하게되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1976년, 솔로몬 제도는 일정 부분 자치를 얻게되어 국회의 권한과 지방 정부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이것은 독립을 위한 기반을 형성하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그것은 독립을 위한 헌법을 제정함으로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1978년 7월 7일, 솔로몬 제도는 영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하게되었고, 독립과 함께 영국 연방의 일원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독립 이후 솔로몬 제도는 경제적으로, 또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고 여러 정부가 교체되는 동안 나라가 안정을 찾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솔로몬 제도는 내전으로 치닫게 된다. 내전의 원인은 자원 분배와 경제적 불만으로 여러 부족들간의 갈등이 생겼고 이것은 정치 지도자들의 권력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다. 특히 말라이타섬과 기구시 간의 경제적 불평등이 내전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이들 각 부족들은 무장 단체를 조직하여 충돌하게 되었다. 1998년 내전이 본격화 되어 무력 충돌로 이어졌으며 수천명이 사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많은 원주민들이 난민이 되었고 기구시 부족들은 말라이타 부족들의 공격으로 인하여 거의 아사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2003년, 호주는 솔로몬 제도의 안정을 위해 내전에 개입하게 된다. 호주는 호주군을 중심으로 국제 평화 유지군(다국적군)을 솔로몬 제도에 파견하여 내전을 종식하고 평화로운 재건 활동을 10년동안 하게 되었다. 이로서 무장 조직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내전은 종식되었다. 내전 이후 솔로몬 제도는 정치적, 사회적 개혁과 회복을 위해 노력을 하였고 비교적 안정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 솔로몬 제도의 정치

영국 연방의 회원인 솔로몬 제도의 정치는 영국 여왕이 군주이며 영 연방 내에서 정치적, 경제적 협력 속에 실제 정치 권력은 총리와 민주 정부에 의해 집행된다. 총리는 정부의 수장이며 정부, 정책을 결정하고 행정 기능을 집행한다. 의회는 하원 50명, 상원 20명으로 구성된 양원제이며 하원은 법률을 제정하고 정부를 감시하며 예산을 승인하고 상원은 법안에 대한 심의를 진행한다. 솔로몬 제도의 주요 정당에는 솔로몬 제도 연합당(Solomon Islands Alliance Party), 민주당(Democratic Party), 국민당(People`s Party), 통합당(United Pary), 자유당(Liberal Party) 등이 경쟁한다. 

- 솔로몬 제도의 경제

솔로몬 제도의 경제는 주로 농업, 어업, 광물 자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업은 코코넛, 바나나, 카사바 등이 주요 작물이며 주로 원주민들의 생계 수단으로 이용된다. 어업은 솔로몬 제도의 주요 경제 기반이며 특히 참지 어업은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인다. 솔로몬 제도는 금광의 전설을 가진 나라 답게, 니켈, 금, 구리, 석회암, 석유, 천연가스 등과 같은 광물 자원이 풍부하다. 이러한 광업은 솔로몬 제도의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솔로몬 제도의 GDP는 15억 달러이며 전세계 180위권의 비교적 작은 경제 규모이다.

- 솔로몬 제도의 교육

솔로몬 제도의 교육은 초등, 중등, 고등 교육으로 진행되며 초등교육은 7세~12세까지 6년 과정으로서 현지어와 영어로 교육을 진행한다. 중등 교육은 13세~17세까지 5년 과정이며 졸업후 대학에 진학한다. 주요 대학에는 솔로몬 제도 국립 대학교(Solomon Islands National University, SINU), 태평양 재림 대학교(Pacific Adventist University, PAU)가 있다. 태평양 재림 대학교는 재림교회(제7일 안식교)에서 운영되며 인근의 파푸아뉴기니에 있지만 솔로몬 제도의 학생들이 많이 진학한다. 이외에도 여러 전문 직업 교육 기관을 통해 간호, 농업 등과 같은 기술 교육과 직업 훈련도 이루어진다.

 

3. 솔로몬 제도의 유적지와 자연 경관

- 솔로몬 제도의 유적지

미군과 일본군의 투리섬 전투 장면

솔로몬 제도에는 여러 역사적 유적지들이 있다. 투리 섬(Tulagi Island)는 2차 세계 대전 중 군사 기지로 사용된 곳이며 일본과 미국의 치열한 전투지로 유명한 곳이다. 기구시(Gizo Island) 또한 2차 세계 대전 중 일본과 미국의 치열한 전투지이며 전쟁의 잔해가 남아있는 유적지이다. 마라오 섬(Mala Island)에는 솔로몬 제도의 고대 원주민들의 전통 마을과 유적들이 있다. 산타 이사벨(Santa Isabel) 섬 또한 고대 원주민들의 유적지가 있다. 이처럼 솔로몬 제도 곳곳에는 고대 전통 마을의 유적지와 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전쟁 유적지들이 있다.

- 솔로몬 제도의 자연 경관

솔로몬 제도 타카타 산과 폭포솔로몬 제도 레노 강솔로몬 제도 비에호 호수
솔로몬 제도 타카타 산과 폭포 솔로몬 제도 레노 강 솔로몬 제도 비에호 호수

솔로몬 제도의 많은 섬들은 열대 우림으로 울창하게 덮여있다. 2,200m의 가장 높은 타카타산(Mount Takitumu)과 1,320m의 산타 이사벨 산(Mount Santa Isabel), 1,200m의 마라 산(Mount Mara)와 같은 산들은 열대 우림으로 덮여있지만 하이킹과 탐험에 좋은 산들이다. 또한 40m 높이의 호니아라 폭포(Honiara Falls), 50m 높이의 마라 폭포(Mara Falls), 30m높이의 타마타 폭포(Tamata Falls)와 같은 폭포들은 솔로몬 제도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더욱 화려하게 보여주는 곳들이다. 솔로몬 제도에는 여러 호수와 강들이 아름답게 어루러져 있다. 레노강(Rennell River), 세일라 호수(Lake Seiala), 비에호 호수(Lake Bieho)와 같은 아름다운 강과 호수들이 자연 경관을 뽑내고 있다. 솔로몬 제도는 900개의 섬들로 이루어졌기에 수많은 해변과 바다로 이루어져있다. 특히 가다르카 섬(Ghizo Island), 말라이타 섬(Malaita Island), 산타 이사벨 섬(Santa Isabel Island)이 대표적이며 모든 섬들이 아름다운 해변과 모래, 맑은 바다로 이루어져있다. 특히 레닝 섬(Rennell Island)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지정될 만큼 해양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기에 스쿠버 다이빙, 스노클링에 좋은 명소이다.

 

 

금광의 전설을 가진 나라, 솔로몬 제도는 금, 니켈, 구리, 석회암,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다. 그러나 기술력과 자금 부족으로 자원 개발은 원할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솔로몬 제도는 울창한 열대 우림과 산들, 강과 호수, 폭포 그리고 아름답고 다채로운 섬과 해양 생태계로 인하여 다이빙을 즐기는 관광객들에게 좋은 휴양지이다. 뿐만 아니라 고대부터 보존되어온 원주민들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 그리고 여러 많은 섬들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부족들의 유적들, 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전쟁의 유적들로 인하여 관광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성장할 잠재력을 가진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