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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바누아투, 땅이 숨겨진 섬나라

by 돌야dolya100 2024. 10. 22.

 태평양 남서부에 위치한 땅이 숨겨진 섬나라, 바누아투(Vanuatu)의 정식 명칭은 바누아투 공화국(Republic of Vanuatu)이며 독립된 주권 국가이다. "바누아(Vanua)"는 원주민 언어(비슬라마, Bislama)로 땅 혹은 고향을 뜻하며 "투(Tu)"는 두 개를 뜻하는 것으로서 두개의 땅 혹은 두개의 고향이란 뜻이다. 이것은 원주민들이 섬과 섬을 연결하는 땅의 개념을 반영한 이름이며 1980년 7월 30일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 식민 통치로부터 독립하면서 바누아투라는 새로운 이름을 채택하였다. 바누아투에서는 다양한 멜라네시아계 원주민 언어들이 110개 이상 사용되고 있지만 공식적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바누아투어(비슬라마,Bislama)이다. 영어는 정부, 교육, 행정, 법률, 비즈니스 등 공식적 분야에서 사용되고, 프랑스어는 과거 영국-프랑스의 식민지배로 인해 프랑스어도, 공식 언어로 지정되어 있으며 영어와 함께 학교, 법률,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된다. 바누아투 원주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비슬라마는 크리올어로서 영어 어휘를 바탕으로 원주민 언어와 영어가 혼합된 피진어이다. 크리올어는 서로 다른 언어들이 혼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언어로 발전된 것을 말하며 피진어는 서로 다른 언어 집단이 기본적 대화를 위하여 사용하는 언어로서 주로 무역, 상업, 식민지배로 인해 생겨난다. 

바누아투 지도
바누아투 지도 바누아투 활화산 예스마타산과 산기르산 바누아투 에스피리투 산투 섬의 고대 유적지

 

1. 바누아투의 영토와 수도, 인구와 인종

- 바누아투의 영토와 수도

약 8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 바누아투는 남 태평양에 위치한 면적 12,189 제곱킬로미터의 작은 나라이다. 북동쪽은 솔로몬 제도, 남동쪽으로는 피지, 남서쪽은 뉴칼레도니아와 해양을 마주한다. 바누아투에서 가장 큰 섬은 에스피리투 산투(Espiritu Santo)이며 중요한 섬으로는 수도가 있는 에파테(Efate)섬과 활화산, 야수르(Yasur) 화산으로 유명한 타나(Tanna) 섬이있다. 바누아투의 섬들은 대부분 화산섬이며 산호초와 울창한 열대우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누아투의 수도는 에파테 섬의 포트빌라(Port Vila)이며 인구는 2023년 기준, 약 5만명 정도가 거주한다. 수도, 포트빌라는 바누아투의 가장 큰 항구 도시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공항이 있는 핵심 도시이다.

- 바누아투의 인구와 인종 비율

2023년 기준, 바누아투의 인구는 약 32만명 이며 인종 비율은 멜라네시아인이 전체 인구의 98%를 차지한다. 바누아투는 멜라네시아계 원주민들이 나라의 핵심이며 그외 폴리네시아인, 미크로네시아인, 유럽인, 아시아인이 2%정도 이다. 유럽인들은 식민시대때 프랑스와 영국의 이주민들의 후손들이 대부분이다.

 

2. 바누아투의 역사, 정치, 경제, 교육

- 바누아투의 역사

바누아투의 역사는 고대 원주민의 정착기, 유럽의 탐험과 식민시대, 독립운동시대와 근대로 나눌수 있다. 태평양의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바누아투 또한 B.C.3000년에서 1000년 사이, 멜라네시아계 원주민들이 정착함으로 시작되었다. 멜라네시아계 원주민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동남아시아의 타이완과 필리핀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로서 도자기 기술과 해양 항해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라피타 문화(Lapita Culture)라 한다. 이들, 오스트로네시아계 사람들은 멜라네시아를 거쳐 폴리네시아와 미크로네시아로도 이주하였다. 또 다른 부류는 파푸아계 원주민이다. 이들은 오스트로네시아계보다 먼저 동남아시아에서 지금의 파푸아 뉴기니 섬으로 이주하였고 멜라네시아 지역으로 이주, 정착하였다. 이들 멜라네시아계 원주민들은 바누아투 뿐 아니라 피지, 솔로몬 제도, 파푸아뉴기니, 뉴칼레도니아 등지로 정착하였다. 바누아투는 아주 오랜 세월 각 섬마다 독립적인 부족 사회를 형성하여 부족의 고유한 문화, 언어, 전통을 보존하고 발전시켜왔다. 대표적 부족에는 니우에 부족(Ni-Vanuatu), 토르바(Torba), 사안(Saan), 마흘(Mahl)등이 있으며 이 부족들의 언어는 100개 이상으로 다양한 부족들이 살고있었다.

바누아투 란달 섬의 돌 상

1606년, 바누아투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스페인의 탐험가 페드로 페르난데스 데 킹로스(Pedro Fernandez de Quiros)이다. "페드로"는 에스피리투 산투(Espiritu Santo)섬에 처음 도착하여 바누아투 지역을 스페인령으로 선언하였으며 그곳의 이름을 에스피리투 산투 (Espiritu Santo)라 불렀다. 에스피리투 산투는 성령이라는 뜻이며 페드로가 성령 강림일(Pentecost)에 에스피리투 산투 섬에 방문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페드로"는 바누아투를 모두 탐험한 후 이스라스 데 라 나비가시온(Islas de la Navegacion, 항해의 섬들)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1774년,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에스피리투 산투(Espiritu Santo)섬과 펜혼(Penhoin) 섬과 같은 바누아투의 여러 섬을 탐험함으로서 유럽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제임스 쿡은 바누아투를 탐험한 후 뉴헤브리디스(New Hebrides)라 이름을 붙였는데 그것은 스코틀랜드의 헤브리디스 제도(Hebrides Islands)에서 유래된 이름으로서 새로운 헤브리디스라는 뜻이다. 1839년, 영국 메서디스트(Methodist, 웨슬리파) 선교사들과 프랑스카톨릭 선교사들이 바누아투에 도착하여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선교사들은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교육과 의료를 통하여 선교활동을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바누아투는 서구 문화로 인해 생활 양식이 변화게 되었다. 1850년대, 산호와 어종이 풍부한 바누아투의 해양 자원과 무역 거점, 군사적 요충지로 삼기위하여 영국과 프랑스는 바누아투를 두고 대립하였다. 그리고 1906년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바누아투를 공동 통치하기로 결정하고 뉴헤브리디스(New Hebrides)라는 이름으로 불려진, 공동 통치 체제를 수립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각자의 나라 법과 규정을 바누아투에 적용시켜, 서로 협력하면서도 각국의 식민지 정책에 따라 바누아투에 대한 정책을 시행함으로서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1930년대 바누아투의 경제는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속에 코코넛 오일, 커피와 같은 농업 상품들이 발전하였으며 생계 수단도 다양화되었다. 1940년대 바누아투는, 2차 세계 대전 동안 태평양의 중요한 미군의 군사 기지로 사용되었다. 이때 미군과 연합군의 주둔으로 인해 바누아투 경제는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1960년대부터 바누아투의 원주민들에게서는, 독립에 대한 요구가 일어났으며 1970년대 초, 독입 운동을 위한 조직들이 결성되었고 독립을 향한 정치적 활동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80년 7월 30일, 공식적으로 바누아투는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고 민주적 정부를 수립하게 되었다. 1990년대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 발전을 위하여 여러 다양한 정책들이 시행되었으며 관광 산업과 다양한 경제 분야에서도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2002년, 정치적 분열로 긴장이 조성되었지만 평화적으로 해결되어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있다.

- 바누아투의 정치

바누아투의 정치는 민주주의와 다당제가 기반이며 대통령제를 채택하였다. 대통령은 국가의 수장이며 공식적 대표이지만 상징적 역활이다. 국회는 4년 임기의 52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국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다. 주요 정당에는 바누아투 공화당, 프로그레시브 연합당, 국민당 등이 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과 목표를 가지고 경쟁한다. 바누아투는 6개의 주요 섬과 여러 많은 작은 섬으로 구성되었기에 각 섬은 지방 정부를 통해 자치로 운영된다.

- 바누아투의 경제

바누아투의 경제는 농업, 어업, 관광업, 서비스 산업이 중심이다. 농산물은 주로 코코넛, 바나나, 카사바, 커피, 고구마 등이며 이러한 농산물은 내수 소비와 수출을 통해 외화 수입에도 크게 기여한다. 바누아투의 관광업은 아름답고 다양한 자연 경관으로 인하여 발달되었으며 중요한 외화 수입의 주요 통로이다. 또한 최근에는 관광과 관련된 금융 서비스, 교육, 의료 등 여러 서비스업이 성장하고 있다. 제조업은 주로 농산물 가공, 목재 가공 등이 대부분이며 주로 내수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바누아투의 GDP는 2023년 기준, 9억 3천만 달러이며 세계 150위권의 작은 규모이다. 바누아투의 경제는 농업과 관광에 의존적이며 섬들로 이루어진 특징으로 교통과 통신 인프라가 부족하여 경제 발전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 바누아투의 교육

바누아투의 교육은 초등 교육, 중등, 고등 교육으로 진행된다.  6세부터 12세까지 6년 과정은 초등교육으로 무료이며, 중학교 과정은 12세에서 16세까지의 4년으로 무료 교육으로 진행된다. 고등학교 과정은 16세에서 20세까지 4년 과정이며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한다. 대학에는 바누아투 대학(University of Vanuatu), 태평양 남부 대학교(University of the South Pacific)가 있다. 바누아투 대학은 교육 자원 및 시설이 부족하며 교육의 질에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3. 바누아투의 유적지와 자연 경관

- 바누아투의 유적지

바누아투 잔디 요새

바누아투는 여러 고대 유적지와 역사적 유적지가 있다. 에스피리투 산투 섬에 있는 잔디 요새(Jardins de la Paix)가 있다. 이곳은 2차 세계 대전때 미군의 군사 기지로 사용된 곳을 기념하는 장소이다. 에스피리투 산투섬의 와카 마르칸(Waka Maran)은 고대 원주민들의 생활 양식을 볼 수있는 곳이다. 란달 섬의 란달 섬 돌상(Stone Figures of Randal Island)은 고대 원주민들이 만든 돌상들이 있는 곳이다. 에스피리투 산투 섬의 북쪽에 위치한 테카와리 유적지(Tekawari Ruins)는 고대 원주민들의 정착지이며, 탕타섬의 바투락 동굴(Batu Raka Cave)은 고대 원주민들이 거주했던 장소로서 동굴 벽화와 유물이 발견된 유적지이다. 바누아투 전역에는 고대 마을 유적(Ancient Village Ruins)들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포트 빌라에 위치한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 of Vanuatu)은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 바누아투의 자연 경관

바누아투 토르 폭포

땅이 숨겨진 바누아투는 아름다운 섬나라이며 자연 경관 또한 빼어나다. 바누아투의 가장 큰 섬인 에스피리투 산투 섬은 맑은 바다와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다. 특히 가우(Gau) 해변과 발레 마레(Belle Mare) 해변은 유명한 곳이다. 아이투타키 섬은 고요하고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다. 바누아투의 활화산 예스마타 산(Mount Yasur)은 361m의, 세계에서 가장 접근하기 좋은 화산으로서 직접 용암 분출까지 관찰 할 수 있다. 에스피리투 산투 섬에 있는 산기르 산(Mount Gharat)은 1,550m의

바누아투 아이투타키 라군

높이로서 등산, 하이킹에 좋은 산이다. 바누아투는 열대우림으로 뒤덮여진 루카우(Lukaou) 숲이 유명하며 에스피리투 산투 섬의 30m 높이의 메라 폭포(Mele Cascades)와 50m 높이의 토르 폭포(Torrential Falls)는 접근성이 좋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또한 40m 높이의 엘리 폭포(Welly Falls)와 20m 높이의 마타 폭포(Mata Falls)도 유명하다. 바누아투는 다양한 해양 생태계를 자랑하며 아름다운 여러 해변,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해안선은 부드럽고 하얀 모래, 높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

다. 또한 여러 많은 라군(석호)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아이투타키 라군(Aitutaki Lagoon), 가우 라군(Gau Lagoon), 와카르라 라군(Wakarla Lagoon), 미라이 라군(Milae Lagoon), 스리스 라군(Smith Lagoon) 등이 유명하다.

 

 

태평양에 위치한 바누아투는 80개로 구성된 섬나라이며 맑은 바다와 다양한 해양 생물, 열대 우림과 화산으로 이루어진 매력적인 관광지이다. 전통과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고 각 섬마다 고유한 언어와 자연과 어우러진 유적지들로 인해 관광의 매력이 더해진다. 조용한 해변과 해안선, 여러 많은 라군으로 다양한 해양 활동을 위한 관광객들에게 좋은 여행지이며 휴식을 위한 여행자들에게는 자연과 문화, 유적지가 어우러진 독특하고 조용한 여행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