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는 "라 쿠카라차(La Cucaracha)"라는 전통적 민요를 즐겨 부르는 나라이다. 라 쿠카라차는 1910년에서 1920년까지 멕시코 혁명 당시, 농민 혁명군의 군가, 민중 가요로 애창되었던 노래로서 바퀴벌레를 뜻하는 스페인어이다. 가사의 내용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바퀴벌레를 독재에 맞서는 멕시코인들의 끈질긴 저항과 혁명에 비유하였고 또 그 멕시코 혁명을 이끌었던 "판쵸 비야(Pancho Villa, 본명은 호세 이사벨 아빌라)" 장군에 비유하였다. 바퀴벌레가 죽여도 잘 죽지 않는 것처럼, 판쵸 비야 장군과 그가 이끌었던 멕시코 혁명군 또한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나듯 끝까지 저항하였던 집념의 "농민 혁명군"에 비유하였다. 멕시코의 공식 명칭은 "멕시코 합중국(Estados Unidos Mexicanos)"이다. 멕시코란 이름은, 아즈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에 거주하였던 원주민들을 "메시카(Mexica)"라 부른데서 유래하였다. 메시카는 아즈텍 제국을 건설하였던 주요 민족으로서 그들 스스로를 "메히코(Mexihco)라 부른데서 파생하였다.
아즈텍어로 메히코는 신의 땅, 물의 땅이란 뜻이며 16세기, 스페인의 식민 시대부터는 스페인어로 멕시코(Mexico)라 불렀다. 이처럼 멕시코는 문화적, 문명적, 역사가 담긴 이름이다. 멕시코의 공식 언어는 스페인어이며 68개이상의 원주민 언어와 364개의 지역 방언(사투리)이 있다. 주요 원주민 언어에는 나후아틀어(Nahuati), 마야어(Maya), 믹스텍어(Mixtec), 토토낫어(Totonac) 등이 있다. 이처럼 멕시코는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문화,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1. 멕시코의 영토와 수도, 인구와 인종
- 멕시코의 영토와 수도
멕시코의 영토는 세계에서 14번째로 큰 나라이며 북 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다. 총 면적은 1,964,375 제곱킬로미터이며 북쪽은 미국, 남쪽은 카리브해와 벨리즈, 과테말라와 마주하며, 동쪽은 멕시코만, 서쪽은 태평양과 접한다. 멕시코는 중앙 고원, 산맥(마드레 산맥), 사막, 해안선, 열대우림, 반도(유카탄, 바하칼리포르니아) 등 다양한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멕시코의 수도는 멕시코 시티(Ciudad de Mexico)이며, 약 900만명이 거주하는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멕시코 시티는 고대 아즈텍 제국의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 위에 그대로 세워진 도시이며 "연방구(CDMX, Ciudad de Mexico)"로도 불린다. 이것은, 2016년에 개정되었던 멕시코 헌법에 따라 멕시코 시티가 연방정부의 직할 지역으로 재지정 되면서 "연방구"로 불려졌다. 연방구로서 멕시코 시티는 자체적으로 법률을 제정하고 지방 정부(정치적 자치)를 운영할 권한이 생긴것이다.
- 멕시코의 인구와 인종
2023년 기준, 멕시코의 인구는 세계 11번째로 많은, 약 1억 3천만 명이며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멕시코의 주요 인종에는 멕시코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메스티소(Mestizo)"가 있다. 메스티소는 16세기, 스페인 식민시대부터 유럽과 원주민 사이의 혼혈로서 이들이 멕시코 문화와 사회를 움직이는 주류이다. 이외에도 15%의 나후아트(Nahuatl), 마야(Maya), 믹스텍(Mixtec), 토토낫(Totonac) 등 여러 원주민들이 있으며,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이주한 유럽계들이 13%, 아프리카계(Afro-Mexican)가 2% 정도이다.
2. 멕시코의 역사, 정치, 경제, 교육
- 멕시코의 역사
멕시코의 역사는 고대 문명, 스페인 식민지(1519~1821년), 독립전쟁(1810~1821년), 근대사(19세기), 현대사(20세기)로 구분된다. 멕시코는 여러 다양한 고대 문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올멕 문명, 마야 문명, 테오티우아칸 문명, 아즈텍 문명 등이 있다. 이 문명들은 고대, 동북아시아와 지금의 러시아에서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에 이주한 아시아인들이 아메리카 전역(미국, 캐나다, 멕시코, 중앙 아메리카, 남아메리카)으로 퍼져 나가면서 생긴 문명들이다. 멕시코의 남동부 베라크루스주와 타바스코 지역에 위치한 "올멕(Olmec)" 문명은, B.C.1200년부터 A.D.400년의 긴 역사를 가진 멕시코의 가장 오래된 문명이며 아메리카 대륙의 첫 번째 문명이다. 올멕 문명은 "문명의 어머니"라 불릴 만큼 이후 여러 고대 문명(마야, 아즈텍)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올멕 문명의 뒤를 이어 "마야(Maya)" 문명과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문명이 생겨났다. 테오티우아칸 문명은 B.C.200년경부터 A.D.700년까지 번창하였고, 마야 문명은 A.D.250년부터 900년까지 존재한 문명이다. 순서로 따지면 올멕, 테오티우아칸, 마야 문명 순이다. 그러나 마야인들은 B.C.2천년경부터 문명 생활을 시작하였지만 고전기(A.D.250SUS~900년) 전까지는 발전이 없었다. 테오티우아칸 문명은 멕시코 시티 북부를 중심으로 고대의 가장 큰 도시로 번창하였으며 달의 피라미드(Pyramid of the Moon), 태양의 피라미드(Pyramid of the Sun)와 같은 대규모 피라미드로 유명하다. "마야(Maya)" 문명은 B.C.2천년경부터 시작되었지만, 고전기(A.D.250년~900년)부터 발전하였다. 어찌보면 올멕 문명보다 더 앞선, 가장 오래된 문명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B.C.2천년경에서 1000년까지는, 지금의 멕시코 남부와 과테말라, 벨리즈의 광범위한 지역에 정착하여 옥수수, 호박, 콩 등을 재배하였던 농경 사회였다. B.C.1천년부터 A.D.250년까지를 마야의 고전기(Classic Period) 전환 시대로 분류된다. 이때는 초기 도시 국가들이 형성되었고 사회 구조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B.C.2천년경부터 A.D.250년까지를 선 고전기(Preclassic Period)라고도 한다. 선 고전기때의 마야 문명은 정착, 농경 사회 형성, 마을과 도시 건설, 다양한 사회 구조로의 발전, 초기 피라미드 건축물, 조각 예술, 종교 의식, 문자의 기호(문자 체계는 없음) 등 마야 사회의 기초가 형성되어 고전기로 향하는 시기이다. 마야 문명은 올멕 문명의 영향을 받아 A.D. 250년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여 번창하였으며 A.D.1519년까지 이어진다. 마야인들은 수학, 마야 문자체계, 달력 시스템을 개발하여 발전시켰고 티칼(Tikal), 팔렌케(Palenque) 등의 도시 건설을 통해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유하였다. 멕시코에는 올멕, 테오티우아칸, 마야 문명 외에도 미슈텍(Mixtec) 문명이 있다. 미슈텍 문명은 B.C.15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산악 지역인, 지금의 오악사카주 지역을 중심으로 생겨났으며 16세기 스페인의 정복시대까지 이어졌다. 미슈텍 사람들은 무역과 전쟁을 병행하면서 세력을 확장하였고 왕국과 도시 국가로 구성되었으며 귀족 계층과 일반 시민으로 구성되었다. 금속 공예와 섬유 산업이 발달하였으며 조각, 도자기 등 예술과 건축으로도 유명하다. A.D.900년에서 1150년 사이, 지금의 멕시코 중부, 중앙 고원 지역의 툴라(Tula)를 중심으로 "토틀텍 문명(Toltec Civilization)" 번창하였다. 툴라의 고대 이름은 톨란(Tollan)이며 정치, 문화, 종교의 중심지로서 토틀텍의 수도였다. 토틀텍 사람들은 건축(톨루카의 피라미드)과 예술(거대한 석상들)과 전쟁에 뛰어났다. 따라서 토틀텍 문명과 사회는 강력한 군사력이 특징으로서 전사 계층을 중요시 하였다. 토틀텍은 여러 도시로 이루어진 도시 연합체 국가로서 각 도시 국가의 통치자는 종교적,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였다. 토틀텍은 귀족들의 내부 분열과 권력 다툼, 미슈텍과 아즈텍의 침략으로 1150년경 멸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아즈텍(Aztec;14세기~16세기)" 문명이 대신하였다. 따라서 토틀텍 문명을 그대로 이어받은 문명은 아즈텍 문명이며, 멕시코의 고대 문명 중 가장 번창하고, 강력한 제국을 형성하였던 멕시코의 마지막 고대 문명이었다. 아즈텍은 토틀텍과 마찬가지로 여러 도시들이 연합하여 세운 도시 국가였으며 황제, 귀족, 사제, 농민 등 복잡한 사회 구조(계급 사회)로 이루어졌다. 아즈텍은 지금의 멕시코 시티(멕시코의 수도)에 위치한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을 수도로 삼아 농업, 군사력을 강화하여 영토를 확장시켜 나갔으며 수도를 테노치티틀란으로 삼은 후 더욱 급속하게 발전하고 성장하였다. 아즈텍의 종교는 다신교였으며 여러 신을 숭배하면서 전쟁 포로들을 바치는 인신 제사가 행해졌다. 아즈텍은 1519년,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에 의하여 정복되어 1521년 멸망하였다. 이로서 멕시코는 스페인의 식민지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1519년 멕시코에 도착한 에르난 코르테스는 아즈텍을 공격하여 1521년 아즈텍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을 정복하였다. 스페인은 멕시코를 새로운 스페인(New Spain)으로 정하고 수도를 멕시코 시티(구 테노치티틀란)로 하여 식민지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때부터 멕시코는 1821년까지 약 300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된다. 19세기 초, 스페인은 나폴레옹의 침략(1808년)을 받았고, 그로인하여 스페인 내전을 겪어야 했으며, 그 영향으로 스페인 중앙 정부의 권력과 권위가 약화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은 스페인에서 식민지로 이주하였던 주민들에게 큰 불만이 되었고 스페인 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치게 하였다. 그리하여 멕시코의 "덴고(미겔 이달고 고향)"에서 1810년 9월 16일, "미겔 이달고" 신부가 독립 선언문을 낭독 하면서 멕시코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겔 이달고 신부는 "크리올(스페인 이민자 후손)" 출신으로 원주민 착취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반감으로 독립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여기에 멕시코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멕시코 전역에서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다. "미겔 이달고"는 여러 전투에 승리하였지만 1811년, 스페인에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미겔 이달고를 대신하여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라는 인물이 독립군을 이끌며 스페인과의 전쟁을 계속 이어나갔다. "모렐로스"는 1813년 벌어진 "아지피란 전투(지금의 미초아깐주)"에서 승리하는 등 여러번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1815년에 스페인군에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이처럼 멕시코는 여러 다양한 민족주의 리더들에 의해 독립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며 여러 많은 작고, 큰 전투도 치루었다. 그러다가 멕시코가 독립할 수 있었던 두번의 큰 전투가 일어났었는데, 그것은 1821년, "비달리아 (Batalla de Vitoria)" 전투와 "아구아스칼리엔테스(Battle of Aguascalientes)" 전투이다. 1821년 7월 5일,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 뒤를 이은 여러 독립군 지도자들이 협력하여 "비달리아" 지역에서 스페인 군대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로 독립군의 사기는 드높아 졌으며 스페인 군대는 저항할 수 없을 만큼 큰 타격을 입게된다. 비달리아 전투, 한달 후인 1821년 8월 7일, 아구아스칼리엔테스 지역에서 스페인과 독립군의 또 다른 큰 전투가 벌어졌으며 이 전쟁에서 독립군이 대승을 거둠으로서 멕시코의 독립을 앞당길 수 있었다. 아구아스칼리엔테스 전투 50일 후, 1821년 9월 27일, 스페인군이 멕시코 시티에서 철수 함으로서 멕시코는 공식적으로 독립을 이루었다. 멕시코는 "미겔 이달고" 신부가 독립 선언문, 엘 그리토 데 도레스(El Grito de Dolores)"를 낭독한 9월 16일을 멕시코 독립 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헌법을 제정하여 연방 공화국 체제를 수립하였지만 각 지역의 정치 세력과 군벌간의 갈등으로 내전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멕시코는 1820년대부터 1830년사이에 여러번의 쿠데타와 군사 정권으로 인하여 시민 정부와의 갈등이 심해졌다. 그러다가 1836년, 텍사스가 멕시코로부터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멕시코는 미국과의 갈등이 심해져 1846년부터 1848년까지, 2년 동안 미국과 전쟁을 하게된다. 이 전쟁에서 패전한, 멕시코는 많은 영토를 미국에게 양도하게 된다. 19세기 중반의 멕시코는 여러번의 내정과 미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국가적 상처와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멕시코는 1857년 헌법이 제정되어 현대적 국가 체제가 형성되었지만, 이 헌법에 대한 반발로 또 다시 내전이 발생하였다. 또한 이 시기, 멕시코는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부채를 영국, 프랑스, 스페인과 같은 유럽 국가들에게 지고 있었다. 이 부채와 관련하여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군사적 개입을 통해 멕시코에 새 제국을 세우려고 1861년, 군대를 파견하였다. 프랑스는 파죽지세로 멕시코의 도시들을 정복하였고 1863년에는 수도, 멕시코 시티를 점령하였다. 프랑스는 "막시밀리아노 대공"을 멕시코의 통치자로 세워 멕시코를 식민지로 삼게된다. 멕시코 국민들은 여러지역에서 또 다시 저항 세력들이 형성되었지만 대통령(베니토 후아레즈)은 국외로 도피하였다. 3년후 1866년, 미국은 남북 전쟁(1861년~1865년)의 내전을 막 끝내고 멕시코를 군사적으로 지원하였다. 미국의 개입으로 프랑스는 점차 멕시코 독립군에게 패배하고 밀려났다. 그리고 1867년 프랑스 군대는 마침내 멕시코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프랑스군의 철수 과정에서 "막시밀리아노 대공"이 멕시코 독립군에게 포로가 되어 1867년 6월 19일 처형을 당하게 된다. 프랑스와의 전쟁은 멕시코에서 외국 지배를 종결시킨 전쟁이었으며 이후 멕시코는 주권을 회복하고 민족주의가 강화되어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겪게된다. 프랑스 철군 후, 곧 바로 외국으로 토피하였던 "베니토 후아레즈" 대통령이 다시 복귀하여 멕시코를 통치하였다. 대통령은 헌법(1857년 제정)을 기반으로 공화정을 재건하고 정치와 경제의 개혁을 시도하며 안정시키려 노력하였다. 1872년 베니토 후아레즈 대통령이 사망한 후 뒤를 이어 "세바스티안 레르도 데 테하다"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정치적 혼란이 가중데어 쿠데타가 발행하게 된다.
멕시코는 1876년, "포르피리오 디아스"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장악하여 약 35년 동안 독재 시대를 맞게된다. "디아스" 장군 아래의 멕시코는 독재와 억압 속에서도 산업화가 이루어졌고 철도, 광업, 농업 부문에서 경제가 발전되었으며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 외국 자본이 대거 유치되었다. 이것은 19세말부터 20세기로 이어지는 큰 변화를 겪는 시기로서 멕시코는 독재, 근대화, 혁명을 거치면서 현대 국가로 전환되는 전환기를 맞게된다. 1910년, 포르피리오 디아스 장군의 독재에 대한 불만으로 멕시코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이 혁명을 주도한 인물들은 프란시스코 마데로, 에밀리아노 사파타, 판초 비야, 베누스티아노 카란사 등의 지도자 들이며, 그 중에서도 "판쵸 비야(Pancho Villa)"의 이야기는 "라 쿠카라차(La Cucaracha)"라는 민중 가요로 부를 만큼 유명하다. 한국의 아리랑 처럼, 라 쿠카라차는 멕시코 민요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일반 대중들이 다양한 문화 행사에서 부르고 있다. 판초 비야의 본명은 "호세 도로테오 아랑고(Jose Doroteo Arambula)"이며 멕시코 북부에서 농민과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혁명군을 이끌었던 지도자(사령관)였다. 그는 뛰어난 전력가이며 강력한 지도력으로 "디비시온델 노르테(Division del Norte, 북부군)" 부대를 지휘하며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판초 비야는 멕시코 혁명군의 사령관으로서 독재자, "포르피리오 디아스"를 몰아낸 후 "프린시스코 마데로"가 권력을 잡도록 지지하였다. 1916년, 판초 비야의 부대는 미국 뉴멕시코주의 콜럼버스 마을을 공격하였다. 미국 역사에서 미국 본토가 공격을 받은 사건은 드물다.
미국은 판초 비야 부대를 추격했지만 체포에 실패하였다. 1923년 7월 20일 판초 비야는 암살을 당하여 사망하게 된다. 멕시코 혁명 이후 혁명군의 지도자들은 멕시코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였다. 1929년, 정치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제도 혁명당(PRI)"을 창설하였고 1934년, 대통령(라사로 카르데나스) 특별법에 의해 토지 개혁이 시행되었으며 외국 소유의 석유회사를 국유화시켰다. 1940년대의 멕시코는 점차 산업화가 안정되었고 경제적으로 성장하게 되지만 여전히 정치적 부패,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는 심각했다. 멕시코의 "제도 혁명당"은 1929년부터 2000년대까지 총 71년 동안 독재와 같은 장기 집권을 하였으며 2000년, 비센테 폭스가 대통령이 되면서 제도 혁명당의 독점적 지배도 종결되었다. 멕시코는 20세기 중반부터 경제 성장이 시작되었으며 정치에서도 변화가 이루어져, 권위주의적 정치에서 민주주의 정치로 전환되었다. 현재의 멕시코는 민주화, 경제 개혁, 부정 부패 척결 등 여러 방면에서 성과를 이루고 있지만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 부패문제, 사회적 불평등, 등 여전히 여러 문제에 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 멕시코의 정치
멕시코의 정치는 연방 공화국 형태이며 대통령제, 의회제, 다당제를 기반으로 한다. 국가 정치 형태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로 나누며 권력 분립의 원칙에 따라 각 기관은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룬다. 멕시코는 대통령 중심의 국가이며 대통령은 국가 원수로서 정부 수반의 역할을 한다. 임기는 6년이며 재선은 불가한데 이것은 독재를 막기 위한 제도이다. 입법부, 의회는 양원제이며 연방 의회로 불린다. 128명으로 구성된 상원은 각 주에서 3명씩 비례대표로 32명이 선출되며 임기는 6년, 재선도 가능하다. 상원은 외교 정책을 검토하고 대통령 임명 승인 권한과 헌법 개정안 승인, 연방 주들간의 갈등을 중재한다. 500명으로 구성된 하원 중, 300명은 지역구에서 선출되고, 200명은 비례대표로 선출된다. 재선이 가능하고 임기는 3년이며 예산 승인, 세금 제정, 법률 제정, 정부 감사 등과 대통력 정책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멕시코는 다당제로서 주요 정당에는 좌파 성향의 모레나(Morena), 중도 우파 성향의 국민 행동당(PAN), 71년동안 장기 집권하였던 제도 혁명당(PRI)이 있다.
멕시코의 최고 기관으로서의 사법부는 연방 대법원(Suprema Corte de Justicia de la Nacion)이며 헌법 해석과 법률 준수 여부를 판단한다. 대법관은 11명이며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하여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멕시코의 정치는 오랜 기간 부정과 부패로 얼룩져있으며 마약 카르텔과의 싸움, 경제적 불평등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방면으로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 멕시코의 경제
2023년 기준, 멕시코의 GDP는 1.47조 달러로서 세계 16위권 경제 규모이다. 멕시코 경제는 중남미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이며 미국, 캐나다와 밀접한 무역을 통하여 제조업, 서비스업, 에너지 산업이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자동차 산업, 전자 제품이 주력 산업이며 농업, 석유, 가스와 같은 에너지 산업도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서비스 산업으로는 관광업과 금융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관광업은 GDP의 약 6%를 차지한다. 농업은 아보카도, 토마토, 고추 여러 농산물을 재배하며 수출하는 세계적 농산물의 수출국이기도 하다. 주요 무역국은 미국과 캐나다이며 이것은 1994년부터 발효된 미국, 멕시코, 캐나다가 맺은 "북미 자유 무역 협정(NAFTA)"통하여, 북미 경제권을 통합한 결과로서 멕시코 수출의 80%가 미국으로 향한다.
멕시코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CPTPP)", "자유 무역 협정(FTA)"과 같은 여러 다자간 무역 협정을 통하여 다양한 국가와 무역을 하고 있다. 그러나 멕시코는 여전히 대도시와 농촌의 경제 격차가 심하고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며 마약 범죄, 멕시코 사회의 부정 부패 등 다양한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는 요인들이 있다. 과거에는 석유 수출에 크게 의존하였지만 현재는 석유, 의존도를 줄이면서 산업의 다각화를 추진중이며 제조업의 혁신, 디지털 경제의 중요성, 청정 에너지, 기술 혁신 등 다양한 분야의 경제를 시도하고 있다.
- 멕시코의 교육
멕시코의 교육은 중앙 정부의 주도에 의한, 의무 교육을 기반으로 한다. 교육 체계는 초등 교육, 중등 교육, 고등 교육으로 이루어진다. 6세~12세까지 6년 과정의 초등 교육이 이루어지며 13세~15세까지 3년 과정의 중등 교육이 이루어진다. 16세~18세까지 3년 과정의 고등 교육이 이루어진다. 멕시코의 대학 교육은 국립과 사립으로 나누어지며 국립에는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UNAM), 국립 폴리테크닉 연구소(IPN), 멕시코 치아파스 국립 대학교(UNACH)가 유명하다. 또한 사립 대학에는 몬테레이 공과 대학(ITESM), 자우마 대학(Universidad Anahuac), 파나마 국립 대학교(Universidad Panamericana)와 같은 학교들이 있으며 이 중 "몬테레이 공과 대학"은 국제적으로도 인지도가 높다. 교육 과정은 학사, 석사, 박사 과정으로 진행되며 전문직, 연구직을 위해 교육이 이루어진다. 멕시코 정부는 교육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디지털 교육과 영어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3. 멕시코의 유적지와 자연 경관
- 멕시코의 유적지
고대 문명이 많은 멕시코에는 고대 유적지들과 문화를 반영한 많은 관광명소가 있다. 멕시코 시티 북동쪽 30km의 거리에는 고대 도시로 유명한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유적지가 있다. 테오티우아칸은 "신들의 도시"라는 듯으로서 태양의 피라미드, 달의 피라미드가 유명하며 대규모 건축과 벽화로 이루어져 있다. 멕시코의 유카타 반도에는 마야 문명의 유적지 중 하나인 "친첸이차(Chichen Itza)" 유적지가 있다. 이곳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알려진 "엘 카스티요 피라미드"로 유명하다. 유카타 반도의 또 다른 마야 유적지는 "코바(Coba)가 있다. 이곳은 고대 마야의 도시로서 높이 42m의 "노흐모울 피라미드"가 울창한 정글 속에 숨겨져 있다. 멕시코 치아파스주에는 또 다른 마야 문명의 유적지, "팔렌케(Palenque)"가 있다. 이곳은 구대 마야 문명의 도시로서 왕궁, 사원들, 복잡한 무덤들, 아름다운 건출물과 조각들이 있다. 멕시코 오악사카주에는 자포텍 문명의 중심이로 알려진 몬테 알반(Mote Alban) 유적지가 있다. 이곳은 높은 산악 지대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서 정교한 건축물과 관측소가 있다.
- 멕시코의 자연 경관
땅이 큰 만큼 멕시코 또한 산맥과 고원, 해안선, 사막, 정글, 호수와 강 등 다양한 자연 경관을 자랑한다. 멕시코에는 "시엘로 산맥(Sierra Madre)"이 있다. 시엘로 산맥은 "시엘로 마드레 오리엔탈(Sierra Madre Oriental)"과 "시엘로 마드레 서리날(Sierra Madre Occidental)"로 나누어 진다. 시엘로 마드레 오리엔탈은 멕시코 동쪽 타마울리파스주에서 시작하여 베라크루스주까지 이어지고, 시엘로 마드레 서리날은 멕시코 서쪽에 위치하며 소노라주에서 시날로아주까지 이어진다. 이 두 산맥이 만나는 지점에 멕시코에서 가장 높은, 약 3,636m의 "피코 데 오리사바(Pico de Orizaba)" 산이 있다. 이 산은 북미에서 세번째 높은 산이며 스페인어로 "피코 데 오리사바"라 하며, 원주민어로는 "페리타리코(Perrito Moreno)"라 부른다. 이 두 산맥 사이에는 약 80만 제곱킬로미터의 높은 고원 지대(Central Mexican Plateau)로 유명하다. 멕시코 동쪽은 카리브 해안이며 유카탄 반도와 베라크루스주까지 이어진다. 이곳에는 세계적 휴양지인 "칸쿤(Cancun)"과 해변도시 "플라야 델 카르멘(Playa del Carmen)", 고대 마야 유적지가 있는 해변 도시 "토룰룸(Tulum)", 유카탄 반도의 물웅덩이로 유명한 "세노테(Cenote)", 풍부한 산호초와 해양 생물의 서식지인 "바하마르(Bahia de la Ascension)", 맑고 푸른 물과 세계적 다이빙 장소 "코바르(Cozumel)"가 있다.
"칸쿤(Cancun)" 정글과 "치아파스주(Chiapas Jungle)"의 정글은 열대우림, 물 웅덩이(Cenote), 마야 유적지를 동시에 관광할 수 있는 곳이다. 칸쿤에서 남쪽으로 130km에 걸쳐있는 도시와 해변을 "비리에라 마야(Riviera Maya)"라 하며 이곳은 멕시코 카리브 해안의 유명한 관광지이다. 이곳의 해변은 모레가 곱고, 부드러워서 "화이트 샌드 비치(White Sand Beach)"로 알려져 있다. 태평양 연안, 멕시코 남부의 게레로 주에는 "아카풀코(Acapulco)"라는 유명한 관광 도시가 있다.
멕시코 남부의 할리스코 주에는 유명한 관광지 "푸에르토 발라타(Puerto Vallarta)"가 있다. 이곳은 맑은 바다와 고운 모래로 유명한 "모레알 비치(Playa de los Muertos)"가 있다. 멕시코의 사막은 미국 남서부의 애리조나주, 캘리포니아주와 멕시코의 소노라 주에 걸쳐 있다. 이곳을 "소노라 사막(Sonoran Desert)"이라 하며 면적은 310,000 제곱킬로미터이다. 이곳은 세노틱 선인장(Cereus giganteus), 붉은 색의 바위, 구릉지대로 구성된 독특한 경관을 자랑한다. 또 다른 사막은 북미에서 가장 큰 사막중 하나인 "치와와 사막(Chihuahuan Desert)"으로서 미국의 뉴 멕시코주와 텍사스 주, 멕시코의 치와와 주, 두랑고 주, 코아우일라 주에 걸쳐있다. 면적은 362,600 제곱킬로미터이며 북미 대륙에서 가장 큰 사막이다. 멕시코의 미첼레온 주에는 여러 작은 마을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파체코 호수(Lago de Patzcuaro)"가 있다. 매년 11월 1, 2일에 "죽은 자의 날"이라는 축제가 열리며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멕시코 중부의 과나후아토 주의 고산 지대에는 "촐루아 호수(Lago de Chollahuasi)"가 있다. 고산 지역의 평화로운 자연 경관을 자랑하며 하이킹,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미국 텍사스 주와 멕시코의 치와와주를 경계로 총 길이 3,051km의 "리오 그란데 강(Rio Grande)"이 흐른다. 이 강을 미국에서는 "리오 브라보 강(Rio Bravo, 용감한 강)"이라 부르며 멕시코에서는 리오 그란데 강(큰 강)이라 부른다. 이곳에서는 카약, 낚시, 하이킹 등 다양한 경관을 즐기며 여가를 보낼 수 있다. 멕시코는 이러한 다양한 자연 경관 덕분에 생태 관광과 모험 여행에 적합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멕시코는 풍부한 역사, 다양한 문와, 고대 문명, 아름다운 자연 경관, 다양한 생태계, 독특한 전통이 어우러진 나라이다. 여러 차례의 식민지 아픔과 독립을 향한 도전 정신, 내전의 상처, 독재에 대한 저항과 혁명, 그리고 개혁을 통해 지금의 멕시코가 세워졌다. 뼈아픈 고통과 상처 속에서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였으며 여러가지 문제와 도전을 안고 있지만 글로벌 사회로의 중요한 위치로 나아가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멕시코 사람들은 "라 쿠카라차"라는 노래를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